▲ 서울시 무지개 농성
성소수자 부모모임
그다음 순차적으로 우리 가족을 오랫동안 알고 지낸 동료와 친구에게 커밍아웃을 했다. 딸애를 아는 사람들은 '놀랍지도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당사자와 사전 의논을 했고, 대상을 선별했고, 막연하나마 기준도 있었다.
그러나 딸애가 성소수자 인권단체 활동(실명 걸고, 민낯으로)을 하면서 우리의 커밍아웃은 다소 정치적이 되었다. 자신의 커밍아웃 결정권을 가족 개개인에게 넘겼고, 이런저런 상황 변화에 따라 내 태도는 달라졌다. 보다 적극적으로, 의도적으로 커밍아웃을 하게 된 것이다. 이유를 달자면 두 가지쯤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나와 내 딸을 통해 성소수자가 막연한 '그 누구'가 아닌 바로 '이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당신 옆에 성소수자가 있어요'를 알리는 운동의 한 방식이라 할 것이다.
둘째, 우리 사회의 흔하디흔한 질문에 명쾌하게 답할 필요가 생겨서다. 예전엔 '그 집 딸, 남자친구 있어요? 결혼은 언제쯤?' 남자친구 있냐는 질문에는 '애인이 있다'는 말로 넘겨버렸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남자를 소개시킬 기세로 파고드는 질문을 회피하는 건 의미도 없고 부적절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딸애의 파트너를 존중하는 방식을 고민하게 된 것이다. 두 사람이, 또 우리 가족이 함께 친밀감과 책임을 나누며 살아온 세월이 무거워졌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이 과정이 마냥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작정하고 시행한 적은 별로 없다. 인생은 예기치 않은 소동의 연속이라 대개는 의도치 않게, 느닷없이 이루어졌다. 시민단체 모임에서 관련 이슈가 등장할 때 그들의 되잖은 갑론을박을 잠재우기 위해서, 우연한 일행의 말잔치에 인내심이 바닥난 지점에서.... 나의 커밍아웃은 차분했지만, 매번 적지 않은 파장을 남겼다. 자신들이 표방하는 '진보'의 본질을 성찰하도록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이렇게 커밍아웃을 여러 번 해왔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은 언제나 가족이었다. 나는 삼 남매 중 둘째고, 남편은 형제자매가 없는 사람이다. 가족구성원이 단출한 것이 다행이긴 하지만, 그것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서로 지나치게 밀접한 관계(친밀감과는 다른 차원의)를 맺게 된다는 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