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얼써 잔디는 금빛 물을 들이고 떨어지는 낙엽을 안을 준비를 마쳤습니다. 이미 소복이 낙엽과 단풍잎이 떨어져 장관이랍니다.
김학현
그러나 우리 집 자랑은 뭐니 뭐니 해도 가을입니다. 가을은 물드는 계절이잖아요. 총각도 가슴에 헛바람의 물이 들고, 처녀도 마음에 사랑의 물이 드는. 우리 집도 물이 든답니다. 버얼써 잔디는 금빛 물을 들이고 떨어지는 낙엽을 안을 준비를 마쳤습니다. 이미 소복이 낙엽과 단풍잎이 떨어져 장관이랍니다. 부러 운치를 위하여 쓸지 않고 내버려 둡니다.
고양이도 제 발치에서 단풍을 이불 삼아 노느라 부산합니다. 우리 집에는 누렁이, 알록이, 꺼멍이, 꺼멍이2가 있는데 그 중에 압권은 꺼멍이랍니다. 어느 집 개가 이토록 주인을 반기겠습니까. 고양이가 주인을 반긴다는 말 못 들었는데 우리 집의 고양이들은 절 졸졸 따라다닌답니다.
어디 외출했다 돌아오면 차문 닫는 소리에 조르르 달려와 애교를 부립니다. 이들도 가을이 신나는 모양입니다. 낙엽 위에서 구르고 이파리를 하나 둘 벗어던지는 나무들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숨바꼭질을 합니다. 참 신나 보이고 행복해 보입니다.
우리 집 주변이 풍경은 겨울도 좋고, 봄도 좋고, 여름도 좋지만 가을만큼은 못합니다. 주변에 물들 만한 나무들이 많거든요. 그러니 우리 집 주변은 가을이 백미일 수밖에요. 제가 솔직히 주변의 나무 이름을 다 알지 못합니다. 침엽수를 제외하고 모든 활엽수들이 빨갛게 노랗게 변신을 합니다.
솔직히 안면도는 가을이 다른 곳보다 아름답지 않은 곳이랍니다. 안면도에 자라는 나무는 대부분 곰솔과 안면송(적송)이거든요. 해안가로는 곰솔이 많고 육지 쪽으로는 안면송이 대세를 이루죠. 그러니 가을이 아름다울 수가 없죠. 녀석들은 물드는 것들이 아니잖아요.
여러 단풍나무들 중 집 앞에 있는 세열단풍(공작단풍)과 또 다른 단풍나무들은 10월말까지는 아직 제 때가 아니라 때깔이 나지 않았습니다. 특히 신나무와 당단풍나무는 시퍼렇기까지 합니다. 그러다 기어이 찬바람이 솔솔 부는 요맘때가 되면 부스스 푸름의 꿈에서 깨어난답니다.
엊그제만 해도 제가 앙탈을 좀 부렸답니다. 왜 단풍이 곱게 물들지 않느냐고요. 단풍나무의 때도 모른 채 말입니다. 아무 기미가 없던 단풍나무들이 스르르 곱게 물들고 일어난 것은 11월초입니다. 올해가 그런지 우리 집 단풍이 늦은지 잘 알 수는 없지만 지금이 중간지대를 지내고 있는 듯합니다.
어떤 나무는 이미 단풍이 들었다 다 떨어졌습니다. 발아래로 수북이 주검들을 수놓고 있으니까요. 또 어떤 단풍나무는 지금이 한창입니다. 울긋불긋이란 말로는 다 형용할 수가 없습니다. 노오랗게 물든 것, 빠알갛게 물든 것, 블그스름하게 물든 것, 칙칙하면서도 흑갈색으로 물든 것... 참 다양하기도 합니다.
가을이 물들 듯 저도 물들겠지요. 희끄무레하게. 검은 것이 희끄무레해지면서 늙는 거겠지요. 나무들은 내년 봄에 다시 생동하며 푸르겠지만, 저는 이렇게 나이를 먹다 어느 날 이 세상을 하직하겠지요. 자연의 영원성과 인간의 순간성이 대비되는군요. 하지만 집 주변이 알록달록 천국인 이 가을만큼은 천국민이 따로 없습니다. 제.가. 천.국.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