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11월 11일 면사포를 입고 결혼식장인 유달산 기슭 작은 암자로 걸러 들어 오는 아내. 이날 첫눈이 내렸다!
최오균
원래 주지스님께서 받아준 결혼식 일시가 11월 11일 11시였는데, 정작 주례를 서 주실 때는 스님께서 11분 늑장을 부리시는 바람에 11월 11일 11시 11분에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지요.
그래서 우리들 결혼식은 작대기가 8개나 되는 '시'를 택하는 운명을 맞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빼빼로데이'의 원조격이 되는 셈이지요. 하하하.
이날 결혼식에는 양가 가족과 아주 친한 친구 몇 사람이 참석을 했습니다. 그날 첫눈도 내렸습니다. 그리고 아내와 나는 국화 일곱 송이를 결혼예물로 선물로 주고 받으며 스님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벌써 우리가 결혼을 한 지 오늘(11월 11일)로 만 44년이 되는 날입니다. 44년 동안 아내와 나는 결혼기념일을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뭐 유별나게 결혼기념일을 챙기는 것이 아니라 <11월 11일>이라는 숫자가 워낙에 기억하기 쉽기 때문에 그냥 넘어갈래야 넘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결혼기념일 날 행사로 아이들이 작은 케이크를 사와서 함께 모여 "해피 웨딩"축하 노래를 부르며 케이크를 먹습니다. 가끔 여행을 떠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과자회사에서 11월 11일을 <빼빼로데이>날로 정하고 초콜릿을 바른 괴상하게 생긴 빼빼로 과자를 엄청나게 선전하며 판매를 하기 시작하더군요. 빼빼로데이를 전후해서 1년 판매량의 60% 정도의 빼빼로 과자를 판매한다고 하니 놀랍기만 합니다.
빼빼로데이의 시초는 1993년 부산광역시 횡령산 아래 어느 여고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 지역 여학생들끼리 다이어트에 성공해 빼빼하게 되자, 살 좀 빼라고 놀리며 빼빼로를 나눠먹는 날이었다고 합니다. "빼빼로처럼 날씬하게 되길 바란다"는 의미로 이날 빼빼로 과자를 주고 받으며 먹기 시작한 것이 빼배로데이의 시초라고 하는군요.
또 다른 유래로는 매년 11월에는 수능시험을 치게 되는 데요, 1995년에는 11월 22일 날 수능시험을 치르게 되었는데 11월 11일이 수능 D-11이라고 해서 후배들이 선배들에게 응원의 의미로 선물한 것이 빼빼로 과자였다고 합니다. 즉 빼빼로가 행운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의미로 선물을 한 것이지요. 올해는 수능시험이 11월 17일 날로 잡혀 있군요.
우리나라 최대 제과회사인 롯데제과는 올해 17종의 빼빼로 기획제품을 출시를 하고 케이스에 편지글을 써서 전달할 수 있도록 설계를 했다고 합니다. 상품 이름도 대형 빼빼로, 캐릭터 빼빼로, 롱형 빼빼로, 초코 빼빼로, 아몬드 빼빼로 등 다양하군요.
롯데월드에서는 11일 오전 11시 어드벤처 1층 쥬라기 광장에서 '모로가면 빼빼로' 윷놀이 이벤트를 진행하여 '모'가 나오면 롯데상품권 1만 원권과 빼빼로를 무료로 증정을 한다고 합니다. 오후 3시부터는 '1희1비 룰렛 돌리기' 이벤트를 진행하고 저녁에는 인디밴드 버스킹 공연이 이어진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롯데제과는 인기 아이돌 EXO-K를 모델로 나눔 광고를 진행한다고 합니다. TV광고로 빼빼로데이를 알리고 빼빼로 수익금으로 설립한 '지역아동센터 건립사업'을 소개하며 '나눔'의 의미를 강조한다고 합니다. 아무튼 이 모든 이벤트가 빼빼로 판매를 촉진하기 위한 것인데요. 금년에는 빼빼로가 얼마나 팔릴지 궁금합니다.
빼빼로데이는 쇼핑과 관련이 깊은 날인 것 같아요. 지난 2009년 인터넷 쇼핑몰 '알리바바'가 이날 독신자를 위한 세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무려 70~80%에 달하는 파격적인 할인율로 판매를 하였다고 합니다. 2016년에는 무려 1천200억 위안(한화 약 21조원)이 판매되어 때 아닌 배송전쟁을 벌어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또한 미국에서는 11월 넷째 목요일 추수감사절 다음날인 금요일을 '블랙프라이데이'로 정하여 전통적으로 연말 쇼핑시즌을 알리며 연중 최대의 쇼핑이 이루어 진다고 합니다. 아무튼 11월11일 전후에서 11월은 국제적으로 쇼핑시즌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11월 11일은 얄팍한 상술로 과자를 팔아먹는 빼빼로데이 날만은 아닙니다. 11월 11일은 '지체장애인의 날'이자 '해군창설 기념일'이고, '농업인의 날'이기도 합니다.
사답법인 한국지체장애인협회는 2001년 11월 11일을 새로운 시작과 출발을 의미하는 숫자 '1'로 구성된 날을 지체장애인들이 신체적 장애를 이겨내고 직립을 희망한다는 의미로 지체장애인의 날로 정했습니다.
한편, 11월 11일 11시에 서울관훈동 표훈전에서는 고 손원일 제독이 해군을 창단하는 창단식을 거행했는데, 창단날짜를 11월 11일로 정한이유는 해군이 국제신사라며 '선비 사(士)'가 두 번 겹치는 날('十'과 '一'이 겹치는 날)을 골랐다고 합니다.
또한 1996년 11월 11일은 '농민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는 뜻을 새기어 흙 '土'자가 두 번 겹친 11월 11일 (土月土日)을 '농업인의 날'로 지정하여 가래떡을 돌려 먹는 '가래떡 데이'라 하기도 합니다.
중국에서는 11월11일을 독신자의 날인 솔로 데이(光棍節:광곤절)로 여우티아오란 길쭉한 모양의 밀가루 튀김과 찐빵을 주고받는다고 하는데, 광곤(光棍)은 1자 모양의 매끈한 몽둥이라는 뜻과 싱글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어쨌든 사람들은 11월 11일에 각종 의미를 부여하여 자신들을 위한 날로 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부부에게는 44년 동안 우리들의 결혼기념일로 각인되어 왔습니다.
11월11일은 누구나 기억하기 쉬운 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날을 기억하고 매년 우리들의 결혼기념일을 챙겨온 사람이 있습니다. 그분은 16년 전 여행에서 우연히 만난 인연을 가진 분이신데요. 지난 16년 동안 우리들의 결혼기념 날이 돌아오면 매년 '가래떡'을 보내오거나 직접 챙겨들고 찾아와서 우리들의 결혼기념일을 축하해주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