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과 노인(Velvia50)가까이 서 있는 두 나무의 대비가 인상적이다. 왼쪽 침엽수와 배경의 봉우리가 닿아있는 곳이 향적봉 정상이다.
안사을
향적봉을 눈앞에 두고 대피소가 먼저 나타났다. 이날 저녁엔 향적봉을 오르지 않았다. 어차피 새벽같이 일어나 일출을 보러 올라갈 것이기 때문이었다. 고작 100m 차이였지만 내일 갈 곳을 굳이 한 번 더 갈 만큼 여유롭지 않았다. 아픈 무릎을 부여잡고 150m 밑의 샘터에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이미 바닥난 체력을 긁어모아야 했다.
대단한 희소식은 매점에서 핫팩을 판다는 것이었다. 이미 늦가을 기후로 접어든 산 위에서 장노출을 하려고 하니 렌즈에 이슬이 너무 빨리 맺혀, 하릴없이 별 궤적 촬영을 포기했던 것이 바로 어제의 일이었다. 동행인이, 향적봉대피소는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이라 아마 핫팩을 팔 것이라고 했던 말에 티끌 같은 기대를 했었다.
대피소에서의 저녁, 별, 그리고 아침 일출저녁거리가 마땅치 않았다. 이틀째 밤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상하는 식재료는 첫날에 다 소모했고 이날은 누룽지 말린 것, 볶은 김치 통조림 150g짜리, 소시지 4개가 전부였다. 버너와 경량코펠, 단출한 식재료를 달랑달랑 들고 취사장에 들어가 보니 완전히 딴세상이었다. 삿갓재 대피소와는 정말 대조적인 광경이었다. 8명의 무리가 포장해온 홍어 한판을 벌인 채로 삼겹살을 굽고 있었다.
누룽지의 양이 꽤 많았지만, 곁에 와서 한 젓가락 거들라는 넉살 좋아 보이는 아저씨의 청을 굳이 거절하지 않았다. 아니, 거절하지 못했다. 햇반의 밥을 비워낸 플라스틱 용기에 소주도 조금 받았다. 소주의 단맛을 모르겠거든 산행 이틀째 밤에 고기 한 점과 함께,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잔만 마셔보라.
엄청난 바람이 부는 가운데 창문 하나를 두고 평온한 공기가 가득했다. 작은 공간에 최대한 들어찰 만큼 들어찬 산객들의 마음은 밥 짓느라 피어오른 하얀 김 만큼이나 훈훈했다.
대피소의 딱딱한 나무침상은 딱 성인 어깨너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불편하기 짝이 없는 그곳에 등과 머리를 대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오후 8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진동으로만 알람을 맞춰두고 최대한 피부 가까운 곳에 붙여둔 핸드폰이 얼마나 떨어댔을까. 맞춰둔 시간보다 10분 더 뒤에 눈이 떠졌다. 밖으로 나가자 어제만큼이나 많은 별들이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가만히 서 있어도 몸이 움직였다. 가뜩이나 높은 그곳에서, 바람은 나를 더 높이 떠올리려 애를 쓰는 듯했다. 대피소의 불빛이 닿지 않는 그늘에 삼각대와 카메라를 설치하고 미리 사 둔 핫팩과 수건 한 장을 두르고 두 시간 반 동안 셔터를 열어두었다. 감도 50짜리 필름으로 별이 얼마나 밝게 담기겠느냐만은, 워낙에 하늘이 좋은 날이었기 때문에 아래와 같이 색색의 별들이 필름에 기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