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중학교 도덕② 교과서(미래엔 출판)의 교사용 지도서 212쪽. 시민불복종의 국내 사례로 제시한 "1980년대에 행해졌던 방송 시청료 납부 거부 운동"의 원인을 "광고 방송"으로 설명한다. 설명 밑에 "시민불복종의 정당화 조건의 의미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도록" 하라는 "지도상의 유의점"도 눈에 띤다.
신영수
도덕교과서는 시민불복종에 이처럼 비상식적인 조건을 붙임으로써 시민불복종을 수동적이고 무력한 권리로 묶어둔다. 그렇다보니 교과서가 제시하는 시민불복종의 사례 역시 밋밋하다. 교과서는 인도 독립운동을 포함해 총 다섯 가지 사례를 든다.
그런데 이중 넷이 외국 사례다. <국가는 왜 필요한가?> 단원에서는 국가의 필요성을 증명하는 사례로 이명박정부 당시 피랍 선원을 구출한 아덴만 여명작전과, 베이징올림픽 야구 우승 등 국내 사례를 들었던 것과 대비된다.
또 국가의 필요성 사례들이 최근인 것과 달리, 시민불복종은 간디, 소로우, 앤서니, 루터 킹 등 최소 수십 년에서 백 년은 더 전에 일어난 일을 사례로 들고 있다. 그나마 국내 사례로는 1980년대 방송 시청료 납부 거부 운동을 소개하는데,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방송 시청료 납부 거부 운동: 공영 방송이 시청료를 징수하면서도 광고 방송을 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이유로 시청료 납부를 거부한 운동"(중학교 도덕② 217쪽, 미래엔 출판)교과서의 서술은 사실 왜곡에 진배없다. 1980년대 시청료 납부 거부 운동은 전두환정권의 보도지침과 KBS의 정권 편향보도에 맞서 언론민주화를 쟁취하기 위한 반독재 민주화운동이었다. 그런데 교과서는 이러한 사실을 삭제하고선, 단지 지엽적 목표의 일부에 불과했던 '광고 방송' 때문이라고 서술한다.
교육에서 사례는 밀접할수록 좋다. 한데 유독 시민불복종 단원에만 오래 된 외국 사례가 많다. 제국주의와 군부독재에 맞서온 우리나라 질곡의 투쟁사에서 굳이 비중이 크다고 하기 힘든, 시청료 거부 운동을 시민불복종의 유일한 국내 사례로 꼽은 것도 상식적이지는 않다. 심지어 그마저도 민주화운동의 성격을 지운, 왜곡성 설명이다.
시민불복종 단원을 이렇게밖에 소개하지 못하는 교과서의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교과서는 역시 시민이 적극적인 주체가 되는 것이 불편한 게 아닐까. 시민을 그저 법의 종속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니 시민불복종의 중요성에 집중하기보다는 그것을 제한하는 데 서술의 중점을 두는 것이다. 또 가까운 국내 사례가 아닌, 오래 된 외국 사례로 점철하는 것이다. 그러나 속지 말자. 우리는 법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법이 우리를 위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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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압 받아들이라"는 도덕교과서, 독립운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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