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성한 울타리 이 엉성한 풍경은 보완하기 전에 잡은 사진이다. 6일 지지대의 사이에 더 많은 지지대를 박고 철사로 보완했다.
홍광석
집을 지어 이사를 한 후에는 사람이 가까이 오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과 바람에 건들거리는 페트병이 눈에 거슬려 지지대와 거기에 달아놓은 페트병도 철거하였는데 다행히도 수년간 멧돼지 소식은 잊고 지냈다.
그런데 금년 가을 들어 멧돼지가 가끔 출몰하여 소소한 흔적을 남기기 시작하더니 지난 10월 중순부터는 거의 매일 밤 출근하다시피 다녀가는 것이었다. 특히 비갠 후 밭에 가면 불청객들의 발자국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정작 멧돼지의 목표는 고구마 밭이 아니었다.
제초제는 물론 살충제를 전혀 하지 않는 터라 베어낸 풀은 흙과 섞어 군데군데 두엄더미를 만들었는데 멧돼지는 그곳을 노린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두엄 속에 숨은 지렁이와 굼벵이가 목표였던 것이다.
심지어 텃밭과 꽃밭의 경계에 쌓아놓은 돌을 모두 들추고 마치 줄을 띄워 괭이질을 한 것처럼 땅을 헤집어 땅 속의 지렁이나 굼벵이를 찾은 흔적이 보였다. 그렇다보니 돌 주변에 겨울을 나는 패랭이나 매발톱 그리고 꽃잔디가 들떠서 내년 봄을 기약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돌이야 다시 쌓으면 되지만 문제는 아내가 아끼는 꽃들의 피해였다.
일단 사무소에 신고했는데 직원의 반응은 몇 년 전이나 다름없었다. 기대가 크지 않았기에 다시 인터넷에서 멧돼지 퇴치법을 찾았지만 우리 형편에 맞는 퇴치 방법은 마땅치 않았다. 태양광 발전으로 야간에도 불을 밝히는 방법이 눈을 끌었으나 멧돼지가 침입하는 경로마다 설치하기는 부담이었다.
울타리를 설치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비용이 많이 들고, 포수를 초빙하여 날마다 잠복하여 퇴치하게 할 힘도 없고, 그렇다고 총기를 구입하여 무장하는 것도 어렵기에 다른 자구책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멧돼지가 좋아하는 백합의 알뿌리를 방치하고 겨울에도 파랗게 살아있는 패랭이나 꽃무릇 꽃잔디 등이 파헤쳐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주에는 몇 년 전에 설치했던 대로 다시 울타리에 지지대를 박고 페트병을 매달았고 밭 가운데에 있던 두엄더미를 숙지원의 가장자리로 모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지지대와 페트병에 반사하는 가로등 불빛도 멧돼지의 침입을 방어하지 못했다.
멧돼지는 용케도 지지대의 틈이 벌어진 곳을 찾아 들어와 돌을 뒤집고 꽃밭의 지렁이를 찾아 꽃 뿌리를 들추어 놓은 것이다. 11월 6일 아침은 서리가 얼음이 얼었다. 멧돼지의 흔적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밖에 나갔으나 이미 멧돼지는 꽃밭의 가장자리는 물론 텃밭의 고구마를 캐낸 자리를 쟁기질을 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뒤집어 놓고 사라진 것을 알 수 있었다.
발자국이 어지럽고 곳곳에 멧돼지 흔적이 보이기는 것으로 봐서 멧돼지 가족의 소행으로 짐작되었다. 뒤집어 놓은 땅에 서리가 없는 것으로 봐서 새벽녘에 다녀간 듯싶었다. 아내는 정리해놓은 꽃밭이 파헤쳐진 것을 보며 이러다가 영영 꽃밭을 망칠 것 같다고 한숨 쉬었다.
마을 노인들에게 이야기했더니 덫을 놓으라거나 드럼통을 묻고 술을 채워놓으면 술 좋아하는 멧돼지가 빠져 나올 수 없다는 황당한 이야기만 했다. 아무래도 산과 면한 동쪽 경계라도 철망을 둘러야 할까 싶지만 오늘(7일)은 일단 지지대를 촘촘히 박고 철사로 울타리를 만들었다.
농촌에 사는 주민이 언제까지 멧돼지 때문에 불안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