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주동 골목길에서 펼쳐지는 추억돋는 옛날 놀이와 체험들
이현숙
나의 골목이야기는 지금은 20대 성인이 된 아들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갓 중학교에 입학한 아들은 키도 작고, 심성이 여린 데다 힘도 약해서 아이들에게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그런 아들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던 나는 어느 날 아들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것을 알았다. 아들은 넓고 편한 도로가 아닌 좁고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이리저리 탐색하며 매일 등하교를 했던 것이다.
대문도 없이 현관문을 열면 바로 주방이나 방으로 들어서게 되는 좁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던 골목길이었다. 마치 미로처럼 여러 갈래의 좁은 길들이 펼쳐져 있는 그 골목길을 손바닥 보듯 훤히 꿰고 있던 아들. 어느 날 나도 아들이 누비고 다닌 그 골목길을 지나 보았다.
하얗게 타고 버려진 연탄재, 길고양이들, 시멘트를 뚫고 핀 들꽃, 알록달록 널린 빨래와 꽃무늬 커튼, 앙증맞은 쓰레기통과 낡은 플라스틱 의자들이 골목 사이사이에 그림엽서처럼 꽂혀 있었다. 또래에게 놀림 받고 친구에게 무시당하며 쓸쓸하고 힘들었을 아들에게 골목길의 정겹고 아기자기한 풍경이 작은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이후에도 아들이 자기만의 비밀처럼 간직하고 누렸을 골목길을 끝내 모른 척했다. 집에서 학교까지 가장 빠른 지름길로 다니는 사람이라고 자부하며 신나게 골목길을 섭렵하는 아들을 그려보는 나의 기쁨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