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급 게시판에 올라온 질문 하나. 급식체는 일상적으로 쓰인다.
이준수
언어는 변화에 변화를 거듭한다고 했던가? 오지다는 '오지고 지리다'로 번졌다. 급식체의 양대산맥인 '오지다'와 '지리다'는 모두 놀라거나 충격인 장면에서 사용하는 감탄사이다. 신성한 배움의 장에서 굳이 유행하는 비속어를 적극 권장할 까닭이 없었다. 어제의 행운에 기대어 '지리다'를 검색창에 입력했다. 여러 개의 하위 뜻 중 하나라도 긍정적인 의미를 닮고 있다면, 계기교육 삼아 급식체의 뿌리를 알아보겠노라 하면 될 터였다.
헛된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지리다'는 익히 알고 있듯, 똥이나 오줌을 참지 못하고 조금 싼다는 의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었다. 정면승부를 하기로 했다.
"잔치국수 지린다 지려."
"저런, 팬티에 똥 묻었으면 씻고 오세요."
"엥? 저 똥 안 쌌는데요?"
지리다는 동사가 들릴 때마다 씻고 오라고 타박을 줬다. 오줌 싼 거 아니라는 항변이 돌아오면, 표준국어대사전에 표기된 정의를 천천히 읽어주었다. 초등학생은 똥과 오줌, 방귀에 취약하다. 어쩌다 엉덩이에서 '뿡' 소리가 나면 큰 죄를 지은 듯 부끄러워하고, 화장실에서 대변 보다 걸리면 그날로 '똥쟁이'가 된다. 그러니 스스로 "나 똥쟁이에요" 하고 홍보할 아이가 어디 있겠는가.
'지리다'는 등장 하루 만에 자취를 감췄다. '지리다'가 사라지니 자연스레 '오지다' 열풍도 꺼졌다. 아이들이 말은 안 해도 우리 담임 선생님이 쓴 '오지다'가 그 '오지다'가 아님을 다 알고 있었을 것이다. 부끄러움을 감추려 교사의 권위를 동원했다. 유치하고 얄팍한 술수였다. 정말 오지지 못한 처신이었다.
요즘 것들 이상한 말 쓴다고 혼낼 필요 없다. 뭐, 우리라고 교양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만 사용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무릇 언어란 시간과 장소, 상황에 맞게 적절히 살아 움직여야 정상이다. 내 경우야 근무시간에 그랬으니 입이 스무 개라도 할 말은 없다. 그나저나 급식체 이거 쓸수록 입에 쫙쫙 붙는다. 급식 먹고사는 사람이라 궁합이 맞나 보다. 진심 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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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구하는 가계부, 미래의창 2024>, <선생님의 보글보글, 산지니 2021> 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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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국수 지린다" 초등학교 선생님이 경험한 '급식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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