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주 국민의당 의원이 31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에서 박근혜 정부 국정원 특수활동비 불법전용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남소연
박근혜정부 4년여 동안 40억이 넘는 국정원 예산이 청와대로 흘러들어갔다고 한다. 국정원은 청와대 비서관과 수석들에게 매달 현금을 007가방에 넣어 전달했다. 거액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이재만 전 청와대 비서관은 검찰 조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국정원의 돈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국정원이 대통령에게 돈을 주었다는 것이다. 검찰은 국정원의 돈이 청와대로 흘러들어간 것을 일종의 뇌물로 보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이뿐만 아니라 국정원은 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들이 정부에 유리한 활동을 하도록 자금을 지원해주고 대선과정에서는 여당후보에게 유리한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 소위 댓글부대의 활동비도 지원한 것으로 밝혀졌다.
국정원이 정부여당의 정치자금을 대주고 국내정치에 개입한 사건은 비단 박근혜정부에서만 발생한 것은 아니다. 국정원이 아예 정부여당의 정치자금을 대주었던 사건도 있었다. 김영삼 정부 시절 민주자유당과 그 후신인 신한국당이 국가안전기획부(국정원의 전신) 예산 1197억 원을 빼돌려 총선 등에 사용한 이른바 '안풍 사건'이다. 다만 법원은 이 돈들이 국가안전기획부 위장계좌에서 일부 나온 점이 인정되지만, 해당 계좌의 돈이 국가안전기획부 예산이라고 볼 증거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한 국가의 정보기관이 대통령에게 거액을 상납하고 관제대모를 주도하고 댓글부대를 후원하는, 더 나아가 정부여당의 정치자금을 지원하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들이 발생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누구도 국정원을 견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국정원은 두꺼운 베일 뒤에 숨어 사실상 정치공작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국가 정보기관이 활동을 함에 있어 어느 정도 비밀이 보장되어야 할 필요성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밀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기 위해 보장되는 것이다. 국정원이 국가안보와 관련된 국내·외 정보를 수집하는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기 위해 비밀보장을 요구한다면 이에 반대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국내정치에 불법으로 개입하면서 비밀보장을 요구하는 것은 범죄은폐행위에 불가하다.
썩을 수밖에 없었던, 국회에 조차 비밀인 국정원 예산헌법은 국회 회의는 공개되는 것이 원칙임을 선언하고 있다. 국회 정보위원회 회의라도 공개되지 않을 필요가 인정되는 부분이 있다면 위원의 과반수의 동의를 얻거나 의장의 판단으로 비공개 처리를 하면 된다. 그럼에도 국회 정보위원회 회의는 비공개가 원칙이다. 예외적 공개 사유조차 규정하고 있지 않다. 국회 회의에 비공개원칙이 적용된다는 것 자체가 위헌의 소지를 가지고 있다.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기 때문이다.
국정원이 국내 정치에 직접 개입하여 공작을 벌인 일련의 사건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진 무소불위의 권력을 부정하게 사용하려 했던 권력자의 불순한 의도에 기한 바가 크다. 하지만 국정원이 어떠한 감시와 견제 수단 없이 불법행위까지도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제도의 문제가 더 클 것이다.
지금과 같이 국정원의 예산과 활동이 철저한 베일 속에 감춰져 있다면 국정원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은 언제든 다시 발생할 것이다. 국정원으로부터 돈을 받은 청와대 인사들에 대한 처벌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국정원이 국민의 감시를 받고 국회 등 다른 기관의 견제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 보안 또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국정원의 예산과 활동내역의 비밀을 조장해 주는 것은 정보기관으로서 국익에 충실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기 위한 것이다. 관제대모를 주도하고 인터넷 댓글러들을 운용하고 대통령의 호주머니나 챙겨주라고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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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사무소 사람사이 대표 변호사다. 민변 부천지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경기도 의회 의원(부천5, 교육행정위원회)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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