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카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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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큰딸이자 백악관 보좌관인 이방카 트럼프를 극진히 대접했다. 지난 금요일인 3일 밤 도쿄 시내 고급 식당에서 만찬을 함께 했다. 이 자리에는 미·일 양국의 대사 부부도 동석했다. 일본 총리가 대사들을 대동하고 외국 대통령보좌관과 이런 자리를 가진 것은 이례적이다.
과거에 일본은 중국을 황제국으로 받든 적이 있다. 중국에 사대를 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당나라(7~10세기)와 명나라(14~17세기) 때 특히 그랬다. 하지만, 일본이 당나라 공주나 명나라 공주를 불러 이렇게 환대한 일은 없었다. 그래서 아베의 행동은 일본 역사로 봐도 이례적인 일이다.
아베의 환대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올해 37세인 이방카는 1981년 10월 30일 출생했다. 3일 밤 식사 자리에서 아베는 생일 선물로 꽃다발과 화장 도구를 건넸다. 4일이나 지난 생일을 뒤늦게 축하해준 것이다.
더군다나 아베는 이방카 도착 10분 전부터 식당 앞에서 기다렸다. 안에서 기다려도 되는데, 지나친 예우를 베푼 것이다. 이런 모습이 TV로 생중계됐다. 약속 시각보다 일찍 나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국민을 대표하는 의원내각제 총리가 정부 관료들을 데리고 나온 자리에서, 그것도 주권자인 국민들에게 공개된 자리에서 과례(過禮)를 베푼 것이다.
과례의 부작용에 대해, 사서삼경의 하나이자 고대 중국 역사서인 <서경>의 열명 편에서는 "예법이 번거로우면 혼란해집니다"라며 "(그렇게 하면) 신을 섬기기가 힘듭니다"라고 했다. 이방카에게 과례를 베푸니까, 이에 대한 비판들이 혼란스럽게 나오고 있는 것이다.
아베의 과례는 그 정도로 그치지 않았다. 이방카가 모금하는 '여성 기업인 지원기금'에 한화 564억 원에 해당하는 57억 엔을 기부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이방카가 승마를 좋아해서 아베가 비싼 말까지 선물했다면, 이들 간에 벌어지는 거래의 본질이 좀 더 극명하게 드러날 뻔했다.
돈보다 성의라고 하지만, 성의가 있어야 돈도 쓰게 된다. 2015년에 아베 정권은 박근혜 정권과의 합의에서 한국인 위안부 피해의 해결을 위해 10억 엔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방카를 위해서는 혹은 여성 기업인들을 위해서는 57억 엔을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10억 엔은 57억 엔의 17.5%다. 이방카 혹은 여성 기업인들에게 베풀 수 있는 성의의 17.5%만 위안부 문제에 베풀 수 있는 게 아베의 한계인가.
아베가 내놓겠다는 57억 엔은 본질적으로는 이방카에게 주는 돈이지만, 형식적으로는 여성 기업인들에게 주는 돈이다. 여성 기업인들을 위한 지원 자체는 바람직하다.
하지만, 일본은 여성에 대한 국가범죄인 위안부 문제로 국제적 비난을 받고 있다. 그래서 우선적으로 성의를 보여야 할 분야는 여성 기업인 문제가 아니라 위안부 문제다. 그런데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베가 위안부 문제에 별 관심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아베는 털끝만큼도 관심이 없다. 작년 10월, 아베는 중의원 예산위원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사죄 편지를 보낼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털끝만큼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뚝 잘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