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손잡고 추는 가장 느리고 아픈 춤, 쓰리쓰리랑>. 군인 복장을 한 무용수들이 거센 몸짓으로 군대를 표현하고 있다.
최영모
"군대 갔다 와야 사람 된다." 한국 사회에서 아주 오랫동안, 의문의 대상이 되지 않은 채 통용되어 온 말이다. 한국에서 군대는 심신에 특별한 이상이 없는 성인 남성이라면 다 갔다 와야 하는 곳이다.
그런데 군대가 그렇게 '사람다운 사람'을 많이 만들어냈다면, 오늘날 우리 사회는 '사람다운 사람'들로 넘쳐났을 것이다. "혹독한 시련을 겪어내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말은, 신화(神話)에 가깝다.
우리 사회는, 그리고 많은 사회가, 군대에서 사병들의 심신에 가해지는 혹독한 시련을 정상이자 일상으로 취급한다. 군대에서 시련을 겪으며 형성되거나 교정된 인격은, 군대 밖에서도 미덕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군대가 사병에게 요구하는 일차적 덕목은 무엇인가? 상관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는 것이다.
무조건 복종을 당연시하는 군대 문화가 사회 밖으로 나온 것이 외국 사전에 한국어 발음 그대로 gapjil이라고 등재된 '갑질 문화'다. 갑질은 군사문화를 중심에 둔 한국 문화에 특유하거나 두드러진 현상이다. 우리는 왜 이러고 사는 걸까?
국민들에게 '자발적으로 순응하는 신체'를 갖추라고 요구하는 것은 근대 국민국가의 주요 특징이고, 군대가 그런 신체를 만들어내는 가장 효율적인 기구였던 것도 보편적 현상이지만, 식민지 근대는 개인의 자발성을 극도로 왜소화하고 일방적 순응만을 요구했다. 학교 교육에서 남녀 불문하고 '온순 착실한 성격과 방정한 품행'만을 요구하던 일제가 '박력'을 강조하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 조선인을 침략전쟁에 동원할 준비에 착수하면서부터였다.
'밀어붙이는 힘'이라는 뜻의 이 단어는 명령에 따라 앞뒤 가리지 않고 돌격해야 하는 말단 보병에게나 어울렸지만, 곧바로 남성성을 표상하는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더불어 오랫동안 남성성을 대표하는 정신이자 태도였던 기개와 지조는 성가신 개념이 됐다. 부정한 권위에 맞서고 부당한 명령에 불복하는 것은 비국민적 악덕으로 재배치됐다. 식민지 원주민들을 기개 없는 박력, 지조 없는 돌격정신을 지닌 제국 군대의 사병으로 만들기 위한 유효한 수단이 무자비한 구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