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셀이 한국전 경험담을 중심으로 쓴 소설들. <스테일메이트와 스탠드오프(Stalmate & Standoff, 교착과 대치, 1993)>와 <페이스 오브 에니미(Face of the Enemy, 적의 얼굴, 2002) ⓒWilliam Russell
김명곤
기자가 알고 있는 한국전 베테랑들 가운데 플로리다 올랜도 거주 빌 러셀(80대 후반)은 한국전이 끝난 이후 이 같은 노력을 개인적으로 또는 조직적으로 주도해온 사람들 가운데 하나다. 1951년 6월부터 1953년 3월까지 한국전에 참전한 그는 가장 치열한 전투 가운데 하나였던 백마고지 전투를 직접 취재하여 미국과 전 세계에 타전한 종군기자 출신이다.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한 러셀은 한국전 이후 워싱턴에서 30년 동안 사회문제 영역에서 저술 활동을 하는 한편, 한국전과 인도차이나 전쟁 등과 관련한 여러 권의 소설을 냈다. 그가 열흘간의 백마고지 전투를 소재로 쓴 소설 <스테일메이트와 스탠드오프(Stalmate & Standoff, 교착과 대치, 1993)>와 <페이스 오브 에니미(Face of the Enemy, 적의 얼굴, 2002)는 한국전 베테랑은 물론 한국전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널리 읽힌 책이다.
그는 중앙 플로리다 지역 챕터173 한국전 베테랑협회에서 10여 년간 <모닝 캄(Morning Calm)>이라는 월간지를 펴내면서 '한국전 알리기(keep-it-alive)' 운동과 더불어 한국전 베테랑들 간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일에 헌신해 왔다.
지난 8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친 인터뷰를 통해 그가 겪은 한국전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잊혀진 전쟁'으로서의 한국전에 참전한 미군 베테랑들의 전후 삶의 일단을 엿보기로 했다.
레셀의 말을 빌리면, 한국전은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일생일대의 경험이었고, 그는 이 잊을 수 없는 전쟁을 미국 사회가 잊지 않도록 오늘도 기억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그의 한국전쟁에 대한 기억의 편린 속에는 당시 참전 군인으로서의 한국전에 대한 생각, 국제정세, 전쟁의 상흔, 아쉬움 등이 들어있다. 그는 현재의 어려운 한반도 상황에 대한 고언도 아끼지 않았다.
러셀에게 한국전 참전은 누가 뭐래도 의롭고 정당한 것이었고, 그래서 더더욱 '무시당한 전쟁(ignored war)'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짧은 만큼 격렬했던 전쟁, 그래서 상흔도 컸던 전쟁, 좀 더 일찍 끝낼 수 있었던 아쉬움이 남는 전쟁, 하지만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전쟁에 대한 그의 목소리를 들어 본다.
아래는 인터뷰를 요약 정리한 것이다.
"한국전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전쟁"- 한국전에 막 참가했을 당시 당신은 한국전에 대해 무슨 생각을 했었나."내가 한국땅 처음 발을 디딘 것은 1950년 8월이었다. 막 개성에서 휴전 회담을 진행 중인 때였다. 사실상 대부분의 참전 미군들은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전쟁이 발발했다'는 정도 외에 한국의 상황을 잘 모르고 있었다. 나도 나중에 한국에 배치되고 나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다."
- 당신에게, 또는 인간에게 전쟁이란 무엇인가."매우 어려운 질문이다. 전쟁이란 나라 간에 존재하는 어떤 이슈가 오로지 전쟁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될 때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당시 한반도는 이승만과 김일성이라는 각각의 통치자들의 신념에 따른 통일을 위해 피차간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참전 군인에게 전쟁이란 무엇인가.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다음날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심신을 있는 대로 소진해야만 하는 경험이다. 종종 한국의 기자들이 '당신은 무엇을 위해 싸웠는가?'라고 묻곤 한다. 그 같은 '어리석은 질문'에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충분한 대체병력이 올 때까지 견뎌내는 것'이라는 대답을 할 수 있겠지."
- 한국전에서 귀환한 후 한국전과 관련하여 당신의 일상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전쟁으로부터 귀환한 후 한국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결코 잊을 수 없는, 혹은 잊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나는 한국전에 대해 여러 권의 책을 썼다. 베테랑협회의 멤버로서 한국전의 이미지(기억)를 살려내기 위해 무던 애를 썼다. 한국전이 '잊혀진 전쟁'이 되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한국전은 2차대전과 베트남전에 끼인 전쟁이다. 보통의 미국민들은 한국전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한다. (반전 운동으로) 적대적인 분위기에서 귀환하여 관심을 크게 끌었던 베트남전의 베테랑들과는 달리, 한국전 베테랑들은 무관심하기 짝이 없는 분위기 속에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