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동 푸서의 강변에서 바라본 푸동의 마천루
허영진
아빠가 중국에 처음 가 본 건 1999년도의 겨울이었어, 밀레니엄(2000년)을 앞두고 중국과 북한의 국경을 돌아보고 당시 분단에 대한 대학생들의 생각을 듣는 EBS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거든. 그때의 중국은 아빠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어. 김포공항에서 1시간이면 도착하는 생각보다 너무나 가까운 나라, 2차 세계대전 때 사용하던 프로펠러 비행기(맥도널 더글라스 제품)을 타고 땅 위로만 2시간 넘게 날아갈 수 있었던 광대한 육지, 그리고 낡은 시외버스 터미널보다도 낙후되어 있던 지방 공항의 시설 등이 중국에 대한 인상이었어.
그리고 2017년 다시 방문한 상하이는 그런 과거의 인상을 한 번에 지워버리기에 충분했지. 푸동의 금융가들이 뿜어내는 불빛, 출장으로 방문한 사무실에서 바라보던 황푸강과 상하이의 빌딩 숲은 이미 우리나라를 능가하고 있었어. 넓은 도로, 화려한 거리(신천지) 그러면서도 100년 전에 이미 열강들의 만들어 놓은 건물들이 오늘날의 중국을 아무 말 없이 설명해주었지.
이곳을 와이탄(Bund)라고 부르는 데,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와이탄에 서서 푸동쪽의 화려한 건물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 반대편으로 아빠를 데리고 간 중국인 친구의 말에 따르면 현지 사람들은 푸동쪽에서 와이탄을 바라보는 것을 더 즐긴다고 하더구나. 실제로 아빠가 보기에도 푸동에서 와이탄을 보는 풍경이 더 아름다웠어. 뭐랄까? 왠지 미래에서 과거를 본다고 해야 하나? 상하이에서 아빠는 완전히 중국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되었지. 그 마음을 간직한 채로 저장성의 이우라는 곳에 가게 되었어.
이우는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있는 도시란다. 임진왜란 때, 파병하기 위한 명나라 병사들을 바로 이우에서 모병했다고 해, 왜구의 침입이 잦았던 탓에 그들과의 전투경험이 많은 절강병(저장)들이 많은 곳이었거든. 이제는 조용한 지방의 한 도시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그건 틀린 생각이었지. 이우 기차역에 도착해보니 이런 표현이 쓰여져 있더라. '세계 소 상공품의 수도' 그 말에 걸맞게 이우에는 남대문시장만 한 규모이 신식 시장 8개가 붙어 있고, 그 뒤로 도시 전체에 공장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공산품이 바로 이우에서 만들어져 오는 것이었던 거지.
그 거대한 시장에서 실컷 놀란 후에는 현지 공장에 가게 되었어. 조금 낡고 커다란 현지 공장 건물에 올라서는 순간 아빠는 너무 놀라 버렸어. 그 공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도 그렇지만, 실내 온도가 39도에 육박해서 숨도 쉬기 힘들 정도인데, 웃통을 벗고 땀을 흘리며 재봉을 하고 물건을 나르는 사람들의 모습이었지.
더 놀란 건 출근이 7시고 퇴근도 9시라는 거였어. 사람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일을 하지 않는 내 모습이 왠지 죄스럽게 느껴졌어. 책상에서 서류로 기획을 하고 제품을 주문하고, 시제품을 보고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다시 요청을 했던 말과 글로 이루어지던 실체 없는 일들이, 현실의 자재와 사람들의 노동력과 합쳐져 실물이 되는 현장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과연 내가 앉아서 한 일들이 정말 최선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구나.
문을 열고 사무실에 들어서니, 에어컨이 충분히 틀어져 시원한 다른 세상이 기다리고 있었지. 현지 공장 사장님과 차를 한잔 마셨는데, 점점 중국의 인건비가 올라서 인건비가 더 낮은 내륙으로 들어가는 것을 고민하신다는 말씀을 하셨어. 아빠부터 공산품은 저렴한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으니 제조하는 데 드는 원가 비용을 낮추려는 노력은 당연한 것이겠지. 하지만 생각으로 이해했던 일들이 현실의 사람과 숨 막히는 현장을 보고 나니 다르게 느껴졌어.
이해하는 것과 느끼는 것의 차이랄까? 그들의 노동이 있어서 세계는 상대적으로 낮은 물가에 공산품을 공급받아 사용할 수 있는 것일 테고, 그들에게는 열악하더라도 임금이 지불되는 직업이니 어설프게 값싼 동정을 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확실히 눈으로 보고 난 후에는 말처럼 쉽게 되지 않더구나. 왜 사람들은 모두 같이 행복할 수 없을까? 하는 평소에 생각하지도 않았던 의문을 혼자 던지고 있는 아빠를 발견하게 되더구나. 마치, 뺨을 맞으면 아프겠지 하는 이해와 실제로 뺨을 맞은 후의 분노와 복합적인 감정이 천지 차이인 것처럼, 열악한 현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냉정한 경제적인 논리는 아빠에게 많이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상하이로 돌아오게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