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가 지난 6월 새로 도입한 '댓글 접기' 기능.
네이버 갈무리
앞에서 네이버의 '경영실적'과 '뉴스 배치 조작'을 언급했다. 이 두 현상은 '충돌'이나 '모순'이라기 보다 '인과관계'로 보는 편이 타당하다. 네이버의 연 매출 4조 원 가운데 70% 이상이 광고에서 나오며, 광고 수익을 극대화하는 손쉬운 방법 중 하나는 광고주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기 때문이다.
네이버가 지난 6월에 야심차게 도입한 '댓글 접기'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네이버는 "갑자기 줄어든 댓글 수나 사라진 댓글을 확인하고 궁금증을 가질 수 있는 많은 부분을 좀 더 투명하게 서비스에 담아냈다"라며 '사용자와 함께 만드는 댓글 문화'라는 이름으로 댓글 게시 방법을 대폭 변경했다. 대표적인 것이 '댓글 접기 요청'이다.
"내가 보고 싶지 않은 댓글이 있다면 바로 접기요청하여 해당 댓글을 접을 수 있어요!"'댓글 접기'가 어떤 것인지는 네이버의 홍보 문구가 잘 말해준다. 네이버 이용자가 보고 싶지 않은 댓글에 '접기 요청'을 누르면 그 댓글은 그 이용자의 화면에서 보이지 않게 된다(네이버는 '접혀 보인다'고 표현하며, 접은 댓글 내용을 다시 확인할 수 있게 해놨다). 하지만 "다수의 사용자들의 요청이 누적되면 현재 댓글에서 보이지 않고 자동 접힘 댓글로 분류"된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요청이 있어야 댓글이 접히고 다시 펴지는지는 네이버만이 안다. 설사 관리자가 골치 아픈 댓글을 자의적으로 감춘 뒤 '사용자 요청' 핑계를 대지 않는다 해도, 다수의 의견이 소수 의견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비민주적 행위를 부추긴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댓글에 허위사실이나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내용이 담기지 않아도, 다수의 (몇 명부터가 '다수'인지도 네이버만이 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화면에서 사라지게 만들 수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말할 권리가 있다. 만일 듣고 싶지 않거나 보고 싶지 않으면 안 듣고 안 보면 된다. 굳이 상대방 입을 '접을' 이유도 없는 것이다.
네이버의 뉴스 댓글란 아래에는 '댓글 서비스의 접기 기능을 이용해 보라'는 권고문까지 떠 있다. 네이버가 시민들의 의견을 얼마나 귀찮은 존재로 여기고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네이버는 이용자의 선택권을 강화하는 조치라는 입장이지만).
시민사회, 수사 요구와 불매운동으로 맞서야앞에서 나는 네이버가 '두 개의 역사적 순간을 맞이했다'고 말했다. 나는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하려고 한다. 네이버가 '사상 최대의 위기'에 봉착해 있다는 사실이다.
네이버가 벌어들이는 막대한 광고수입은 사용자로부터 나온다. 사용자가 눈으로 보아 주고, 클릭해 주지 않는 한, 그 누구도 막대한 광고비를 지불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사용자의 신뢰를 배신한 것은 네이버의 존립 근거 자체가 흔들리게 된 것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인위적 재배치를 통한 여론조작은 국정원의 댓글 공작이나 '블랙리스트'에 비견될 범죄행위다. 하지만 한성숙 대표의 사과문을 보면, 이런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깨닫지 못한 듯하다.
그는 '사업 제휴와 뉴스 서비스 분리'나 '인공지능 추천 기술 적용으로 편집자의 영역 축소' 등을 대책이라고 내놓고 있다. 네이버는 기사나 검색어 조작 등의 혐의가 불거질 때마다, 모든 과정이 사람의 개입 없이 알고리즘을 통해 자동으로 이뤄진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한 대표의 안이한 상황의식은 그가 위기를 극복할 역량과 의지가 있는지 의심케 한다. 대중의 눈높이와 크게 어긋난 사과문을 읽으면서, 그가 실존 인물 아니라 (네이버가 도입하겠다는) 인공지능의 베타버전이 아닐까 하는 기막힌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네이버가 깨달아야 할 것은, 민주주의의 권력만 시민들로부터 나오는 게 아니라, 인터넷 서비스의 모든 수익 역시 시민들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이다. 네이버의 여론조작은 민주주의를 말길(언로)를 왜곡하는 범죄로 당연히 수사의 대상이 돼야 하지만, 이와 별개로 시민들의 두려움을 깨닫게 해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네이버가 이제까지 벌인 여론조작 행위를 스스로 밝히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기 전까지, 나는 네이버의 어떤 서비스도 사용하지 않을 생각이다. 아울러 네이버가 서비스를 확장하고 있는 해외에도 네이버의 기막힌 행태를 알려갈 계획이다. 뜻을 같이 하는 분들의 참여를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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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오마이뉴스 전국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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