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지난 24일(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 타이슨 스코너 우래옥에서 열린 동포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다면 홍 대표가 미국을 찾은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25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렸던 '워싱턴 동포 간담회'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홍 대표는 이날 간담회에서 "유감스럽게도 정부가 제대로 북핵 안보 문제를 해결해주기 않기 때문에 워싱턴에 부득이 올 수밖에 없었다"며 "저희들은 정치적 목적으로 온 것이 아니라 안보 목적으로 온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가 하면 홍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의 "안보위기에 대해 우리가 주도적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한다"는 지난 10일 발언을 겨냥해 "대한제국이 망할 때 러시아·중국·일본 틈 속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 구한말 고종황제 같은 말씀"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요약하면, 문재인 정부에게 안보 위기를 해결할 능력과 의지가 안 보이기 때문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어쩔 수 없이 미국을 방문했다는 거다.
그런데 듣고 보니 요상하다. 홍 대표는 문재인 정부에 앞서 지난 9년 동안 대북 정책을 주도해온 주역들이 당시 집권 여당이었던 자신들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는 모양이다. 출범한 지 5개월이 지났을 뿐인 문재인 정부에게 북핵 안보문제의 책임을 총체적으로 떠넘기는 뻔뻔함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안보는 보수라는 말이 무색하게 국가 안보를 불안과 극한 위기 속으로 몰아넣은 건 다름 아닌 이명박·박근혜 정권이었지 않나.
그들은 집권하는 동안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 사건, 노크 귀순 사건, 목함 지뢰 사건 등 '뻥' 뚫린 국가 안보로 국민을 불안에 떨게 만드는가 하면, 막대한 국민 혈세가 투입된 차세대 전투기 사업과 한국형 전투기 사업을 무능과 부실의 온상으로 전락시켜 버렸다. 방산비리와 군납비리를 막지 못해 극심한 전력공백과 안보공백을 초래하게 만든 것도 그들이었으며, 극단적인 대북정책으로 남북관계를 파탄으로 몰고간 것도 그들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군 사이버사령부와 기무사령부 등이 정치에 동원된 것도 그들이 집권할 때 벌어진 일이었다.
북한의 핵실험이 문재인 정부의 안보 무능 탓이라 주장하는 대목에선 실소를 금할 수가 없을 지경이다. 같은 논리라면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 자행된 4차례의 북핵실험은 어떻게 설명할 텐가. 고종 황제를 무능하다고 단정짓는 역사적 무지는 또 어떠한가. 현재 학계에서는 고종 황제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유약하고 무능한 인물이었다는 기존의 주장과 열강의 각축장이었던 조선을 자주권을 갖춘 근대개혁국가로 변모시키기 위해 노력한 인물이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홍 대표의 인식은 고종 황제를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의 영향력에 좌지우지되는 무능한 인물로 그려낸 식민사관의 주장을 고스란히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학계의 입장은 사뭇 다르다. 고종 황제가 열강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조선의 자주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왔다는 점을 인정하는 추세다. 여전히 시각의 차이가 존재하기는 하나, 고종 황제가 식민사관이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무기력하고 무능한 인물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대한제국이 패망한 이유는 복잡한 내외적 상황들이 맞물린 결과라 봐야 한다. 그 중에는 나라가 어찌되든 말든 자신들의 이권 챙기기에 급급했던 기득권 세력, 군량미까지 빼돌릴 만큼 극심했던 관료들의 부정과 부패, 위정자들의 무능과 무책임, 나라 팔아먹기로 작정한 영혼 없는 인사들의 활약(?) 등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홍 대표는 마치 고종 황제가 무능해서 나라가 망했다는 듯이 말하고 있다. 고종 황제가 지하에서 가슴을 칠 왜곡이자 궤변이다.
홍 대표는 이번 방미의 목적이 문재인 정부의 외교 무능 때문이라고 역설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을 문제삼으며 애꿎은 고종황제를 거론하기도 했다. 그러나 홍 대표의 주장은 지난 9년 동안 국정을 운영해온 주축들이 한국당이었다는 점에서 전혀 설득력이 없다. 회사를 부도낸 당사자들이 사태 수습에 여념이 없는 후임자에게 부도의 책임 떠넘기며 어깃장을 놓는 것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홍 대표의 발언을 보고 있노라면 가히 언어도단과 자기부정의 끝판왕을 보는 듯하다. 9년간의 총체적 무능과 부실을 출범한 지 5개월 밖에 안 된 정부에게 통째로 떠넘기는 재주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지난 9년 동안의 무능과 무책임은커녕 온 국민을 충격과 좌절 속으로 밀어넣었던 1년 전의 일도 기억하지 못하는 듯하다. 망각수(忘却水)라도 마신 모양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어찌 그리 뻔뻔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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