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청원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 1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남소연
친박 청산 대상자로 지목돼 탈당 권유를 받은 서청원 자유한국당 의원이 칼을 뽑아 들었다. 그런데 이 한방의 무게감이 예사롭지 않다. 친박 청산을 주도하고 있는 홍준표 대표의 최대 약점으로 지목돼온 '성완종 리스트'를 직접 거론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홍 대표가 검찰 수사 과정에서 자신에게 구명을 요청했다는 서 의원의 폭로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전세는 대번에 뒤바뀌게 된다. 친박청산 작업이 물거품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대법원 판결을 앞둔 홍 대표가 돌이킬 수 없는 내상을 입게 될 수도 있다.
서 의원이 관련 사실을 폭로한 시점은 지난 22일이었다. 이날 서 의원은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대법원 최종심을 기다리는 사람은 야당 대표로서 결격 사유"라며 "고 성완종 의원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 과정에서 홍 대표가 나에게 협조를 요청한 일이 있다"고 폭로했다. 이어 "진실을 얘기하지 않았을 때는 제가 진실을 증거로 내놓겠다"고 말해 자신에게 강력한 패가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홍 대표는 즉각 반발했다.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나는 다른 친박을 살리려고 박근혜 정권이 사건을 만들어 1년6개월 동안 고통을 받았던 소위 성완종 리스트의 최대 피해자"라며 "협박만 하지 말고 녹취록이 있다면 공개해서 내가 회유를 했는지 아니면 거짓증언을 하지 말라고 요구했는지 판단을 받아보자"고 맞받아쳤다. 그러면서 홍 대표는 "불법자금은 먹어본 사람이 늘 먹는다"며 "노욕에 노추로 비난 받지 말고 노정객답게 의연하게 책임지고 당을 떠나라"고 일갈했다.
서청원-홍준표의 공방, 누구 말이 진실?친박 청산과 맞물려 홍 대표의 구명 의혹이 폭로되자 서 의원이 언급한 증거가 무엇인지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와 관련 이용주 국민의당 의원은 23일 "항소심을 앞두고 서 의원과 홍 의원 사이에 오간 얘기는 '항소심 가서 윤승모씨가 진술을 번복해 달라'였다"면서 "단순한 협조요청이 아니라 번복을 해달라고 명확히 말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홍 대표가 서 의원에게 진술번복을 해달라고 요청하는 녹취록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홍 대표와 서 의원 사이의 진실공방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세간의 관심은 녹취록에 집중되고 있다. 녹취록의 공개 여부에 따라 파장의 강도와 세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만약 녹취록이 실제로 존재하고 이것이 공개된다면 정국이 크게 요동치게 될 것은 불문가지다. 당장 홍 대표가 주도하는 친박청산 작업과 보수통합 움직임에 제동이 걸리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경우에 따라 '성완종 리스트'에 연루된 인사들에게 불똥이 옮겨붙을 수도 있다.
이처럼 녹취록의 공개 여부는 홍 대표와 서 의원 사이의 진실공방의 진위를 가려줄 열쇠가 될 뿐만 아니라 향후 정치권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중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이는 바꿔 말하면 녹취록이 공개되지 않는다면 이번 논란은 그렇고 그런 저급한 정치공방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불필요한 정치적 논란을 종식시키고,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라도 서 의원과 이 의원은 하루 빨리 녹취록을 공개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이번 논란을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이유들이 있다. 홍 대표와 서 의원의 낯뜨거운 이전투구 속에 간과해서는 안 되는 몇 가지 '함의'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서 의원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그는 불법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는 인물이자 진술 번복을 시도한 사람을 한국당의 대선후보로 추대한 셈이 된다. 다시 말해 홍 대표의 부도덕성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이를 묵인하고 방조했다는 뜻이다. 서 의원은 홍 대표의 자격 없음을 성토하기 이전에 그와 같은 부적격 인사를 공당의 대선후보로 추인한 까닭이 무엇인지 국민 앞에 소상히 밝혀야 한다.
서 의원의 폭로가 사실일 경우 대법원 판결을 앞둔 홍 대표의 재판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홍 대표는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1억원의 불법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년 6월을,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당시 항소심 재판 결과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홍 대표의 측근들이 검찰 수사 직전 윤씨에게 보좌관이 돈을 받은 것으로 해달라고 회유한 사실이 드러나는 등 혐의를 입증할 증거들이 상당했음에도 항소심 재판부가 윤씨의 진술이 정확하지 않다는 점을 들어 무죄를 선고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 재판부는 이완구 전 국무총리에게도 1심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한 전례가 있어 논쟁을 더욱 증폭시켰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홍 대표가 떳떳하다면 서 의원에게 전화해 구명 요청을 할 까닭이 전혀 없을 터다. 서 의원의 폭로로 새롭게 드러난 사실이 대법원 재판과 검찰 수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