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를 베어낸 해저모는 텅빈 들녘단양군 적성면 하리, 10년차 유기농 논에서 갓 벼수확을 마치다
유문철
봄꽃이 터져 나오는 4월에 볍씨 뿌려 못자리 만들고, 논물 콸콸 쏟아부어 논을 갈아 모심어 일 년 열두 달 중 절반인 여섯 달 동안 쌀농사 지었습니다. 올해로 열 번째 유기농 쌀농사입니다.
30대 중반 혈기방장하고 푸릇푸릇했던 청년은 열 살 아들을 둔 불혹의 한가운데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황금 들녘 이삭이 고개를 숙이듯이 제 나이도 어느덧 고개를 숙이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들녘을 가득 채웠던 벼 이삭을 다 베어내고 해 저무는 빈 들녘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수확의 기쁨은 없고 괜스레 눈물이 찔끔찔끔 비어져 나옵니다. 농사지어온 지난 십 년 세월.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요? 강산뿐만 아니라 제 삶이 꼭 그렇습니다. 얼굴 하얗고 손 곱던 도시내기는 그 십 년 세월 동안 손에는 온갖 흉터가 빼곡하고요. 허리는 옆으로 휘었습니다. 팔, 다리 안 아픈 곳 없으니 농한기가 되면 정형외과를 제집 드나들 듯이 합니다.
이럴 줄은 몰랐습니다. 머리로 아는 것과 몸으로 아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 거리가 멀다는 걸 뼈저리게 겪고 느낀 세월입니다. 석유 문명, 산업 문명, 돈이 최고인 자본주의 문명을 벗어나, 생명순환의 평화 세상을 꿈꾸며 시작한 유기농 농사는 책에서 안 것과는 거리가 많이 멀었습니다. 농촌의 비참한 현실과 처참한 농촌을 만든 국가와 자본, 제국의 야만과 폭력에 치를 떠는 세월이었습니다.
두 해 전 벼랑으로 떨어지는 농민들이 민중과 함께 들고일어나 민중총궐기를 했지요. 농민과 민중에게 국가 파탄의 화신인 박근혜는 경찰 졸개들을 시켜 물대포로 응답했습니다. 그 무시무시한 물대포의 위력에 두려움 없이 맨 앞에 선 칠순의 백남기 농민은 물대포를 온몸으로 받아내었습니다. 우리는 그 모습을 현장에서 또는 스마트폰으로 생생하게 지켜보며 치를 떨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