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다 북서부 펜사콜라 지역의 한국전 메모리얼. 미 전역에는 이같은 한국전쟁 메모리얼이 112개나 있다.
김명곤
한국전 베테랑들은 다른 전쟁의 베테랑들에 비해 비교적 늦게 기억되기 시작했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기억되기 시작한 두 번의 큰 계기가 있었다. 첫 번째 계기는 한국전이 끝난 지 28년이 흐른 1985년 처음으로 미국 전역의 한국전 베테랑들의 모임인 '한국전 베테랑협회(Korean War Veterans Association, Inc)'를 발족한 것이다. 또 다른 계기는 이보다 10년 뒤인 1995년 수도 워싱턴에 한국전 메모리얼(Korean War Memorial)을 건설한 것이다.
한국전 베테랑 윌리엄 노리스(William T. Norris)는 1985년 6월 25일 뉴욕 주 정부에 한국전 베테랑협회(Korean War Veterans Association, KWVA)로 창립·등록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한 달 후인 7월 26일 그를 포함한 40명을 창립 발기인으로 첫 모임을 했다. 1986년 1월에는 <그레이비어즈>(Graybeards)라는 공식 잡지를 발행하여 한국전 베테랑들의 소식을 내외에 알리기 시작했다.
1985년 당시 초기 멤버들이 밝힌 창립 취지에는 왜 이들이 뒤늦게서야 한국전 베테랑협회를 창립했는지 잘 드러나 있다. 이를 요약한 '미션 스테이트먼트(Mission Statement)'를 보면 한국전 참전베테랑협회의 지향점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대로 소개하면 ▲국가방위(DEFEND our Nation), ▲베테랑 돌보기(CARE for our Veterans), ▲유산의 영구화(PERPETUATE our Legacy), ▲실종 및 사망 전우들을 기억하기(REMEMBER our Missing and Fallen), ▲메모리얼의 유지(MAINTAIN our Memorial), 그리고 ▲자유 한국 지원(SUPPORT a free Korea) 등이다.
특히 이들이 벌인 한국전 참전 베테랑 기념물 설립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베테랑협회는 전국에 한국전 참전 기념공원이나 조형물을 설립하기 위해 각종 모금행사는 물론 지역의 연방 상하원 의원들에게 활발한 로비 활동을 벌여 연방정부 보훈청으로부터 지원을 받아냈다.
이들의 '흔적 남기기'는 전쟁 당사자인 한국민들조차 놀랄 정도로 줄기차게 전개되어 2015년 5월 현재 미 전역 41개 주에 무려 112개 이르는 한국전 참전 기념공원 또는 기념 조형물들을 구축했다. 이 같은 수치는 미 재향군인회 사이트와 연방 보훈처 사이트 등을 검색한 결과 드러난 것이고, 2년이 흐른 현재의 집계는 업데이트되지 않아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주별로 살펴볼 경우, 가장 많은 한국전 메모리얼 파크를 가진 주는 뉴욕주와 매사추세츠주로, 각각 11개를 기록하고 있다. 미네소타주와 미주리주가 각각 8개, 참전 베테랑들의 은퇴지로 인기가 높은 플로리다는 6개, 펜실베이니아 5개, 캘리포니아 4개 순이었다. 이들을 포함하여 2개 이상 가지고 있는 주는 24개 주였다.
주별로 이 같은 한국전 참전 기념공원이나 조형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과는 별도로 1995년 수도 워싱턴에 조성된 한국전 베테랑 메모리얼(Korean War Veterans Memorial) 파크는 시간이 갈수록 방문객이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방정부의 지원과 홍보 탓도 있지만, 각 주의 한국전 베테랑 지회가 벌이고 있는 방문 프로그램들이 활성화되면서 생긴 성과다.
워싱턴을 갈 때마다 가족들과 함께 메모리얼 파크를 방문한다는 플로리다 올랜도 거주 로버트 웨닝거씨(86)는 "비옷을 입고 거닐고 있는 모습의 동상들은 바로 나를 본떠서 만든 것 같이 생생하다"면서 "온통 먼지투성이에 메마르고 헐벗은 이름 모를 산야, 혹한에 동료들이 죽어간 것을 생각하면 전쟁의 참혹함이 아프게 기억난다"고 말했다. 그는 "3년 전에는 40여 명의 참전 동료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왔는데, 이제 그 가운데 반절은 죽거나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겨 생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다"며 "내년 아니면 그다음 해에 다시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