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그림
눈빛
어떻게 모든 집을 찾아다닐 수 있느냐 하는 궁금함은 오래지 않아 풀었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신문을 돌리는 일을 했어요. 신문을 돌리려면 집배원처럼 마을집을 꼼꼼히 알아야 합니다. 우유를 돌리는 일을 할 적에도, 다른 가게에서 배달을 할 적에도, 모두 마을집을 낱낱이 알아야 하지요.
마을사람이기에 마을집을 꿰뚫기도 합니다. 한마을에서 사는 이웃이니 서로서로 마을집을 환하게 들여다봅니다. 일도 일이라고 할 만하지만, 마을에서 하는 일이란 늘 이웃을 마주해요. 이웃집 사람이 우리 가게 손님입니다. 우리 스스로 이웃가게에 손님으로 찾아갑니다.
이런 흐름에서 더 짚어 본다면, 지난날에는 세금고지서는 드물고 참말로 편지가 많았어요. 엽서도 많았고요. 전화조차 드문드문 있던 무렵에는 흔히 편지나 엽서를 띄웠습니다.
하루나 이틀쯤 가벼이 기다리면서 글월을 띄워요. 사나흘이나 이레쯤 넉넉히 기다리면서 글월을 써요. 오래고 깊은 손길을 담아 글월을 적어 띄우고, 오래고 깊은 손길을 담은 글월을 기쁘게 받지요.
그러니 이런 글월을 가방 가득 담아서 나르는 집배원은 배달이라는 일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마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 주는 일꾼입니다. 집집마다 기쁘거나 슬픈 이야기를 살포시 건네는 이웃님이에요. 때로는 봄철 제비처럼 새롭고 반가운 이야기를 알려주기도 하고요.
1994년 대학 4학년 여름방학 때 아르바이트를 하던 날 우연히 우체국 잡지 기사에서 정년퇴직을 앞둔 지리산 산골마을의 집배원을 알게 되었다. 문득, 나는 집배원의 일상을 촬영하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 차 그에게 연락도 하지 않고 무작정 대구에서 버스를 타고서 그의 근무지인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함양군 마천우체국까지 찾아갔다. 당시 나는 학생 신분으로, 그는 자신을 며칠이고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게 해 달라는 나의 요청을 첫 만남에 거절하였다. 나는 며칠 뒤 우체국의 허락을 얻으면 그를 설득할 수 있을 거라 생각되어 발걸음을 우체국으로 돌렸다. 사정을 말하니 우체국장님은 선뜻 집배원용 오토바이까지 협조해 주셨다. 그 후 그에게 촬영을 허락해 달라 재차 간곡하게 말했고, 그는 나의 부탁을 끝내 들어주었다. 그는 집 대문 옆에 작은 방을 내주었고, 함께 집밥까지 먹으며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는 당시 나의 열정을 가상히 여겼던 것 같다. (3쪽/머리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