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 12월 4일 서울시 영등포구 문래근린공원에 위치한 박정희 흉상이 훼손됐다. 박정희의 얼굴과 계급장 그리고 군복엔 빨간색 락카가 칠해졌고, 흉상을 떠받치고 있는 좌대에는 '철거하라'는 문구가 새겨졌다.
김지현
하지만 이는 완벽히 잘못된 역사관과 시대 착란에 기인한 태도입니다. 조선의 근대화를 오로지 일본과의 관계에서만 바라본 역사, 그러니까 일본이 식민지배의 정당성을 위해 주입했던 바로 그 역사만 존재할 때 조선의 근대화는 위기의 조선이 구원받은 서사로 남게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전후 한국의 현대화를 오로지 박정희라는 인물을 통해서만 바라볼 때, 당대의 다른 역사와 가치관은 완전히 누락시킨 상태로 모든 것이 박정희로 대변되는 기형의 서사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조선이 일본을 대하며 공백으로 남겨뒀던 대 일본 이외의 역사와 문화적 가치관은 중요합니다. 그것이 당시 조선과 아시아, 세계와 근대를 제대로 이해하는 단서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한국이 수시로 박정희를 호출하며 공백으로 남겨뒀던 한국의 철학과 역사가 중요합니다. 그것이 지난 한국의 현대사와 현재의 한국을, 나아가 세계관과 시대적 가치를 건강하게 이해하는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한국은 박정희를 의심해야 하고 박정희를 부정해야 하고 박정희를 죽여야만 합니다. 그래서 전후 한국의 격동의 시기를 다양한 방법으로 묘사하고 설명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렇게 아이콘이 되어버린 박정희를 한국인의 유전자에서 도려내고 '그 신화를 실제로 믿었던 때가 있었다'고 스스로 조소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진정 착오 없이 사고하고 착란 없는 정신으로 살아가는 현대화 이후의 한국인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7년의 한국 사회는 신화를 믿는 사회, 정확히는 현재 진행형의 신화 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박정희라는 신을 동상에, 초상화에, 집터에, 우표에 담아내며 역사와 인식과 문화와 세계관에 각인하고 있습니다. 박정희는 죽었지만 박정희의 유령은 그렇게 한국 사회를 배회 중입니다. 그 유령의 숭배가 21세기로 넘어와 박근혜를 정치인으로 만들고 지금을 만들었음을 포착해야만 합니다.
그걸 알아채지 못했으므로 주인 없이 방치된 박정희 흉상 하나에 이렇게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이 하나둘씩 붙는 것입니다.
당연히 주인이 있을 거라 여기는 사법부의 나태, 당연히 구청 땅에 있으니 구청 소유물일 거라 여기는 행정기관의 나태가 지금 이 사건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나는 무죄를 주장해왔습니다. 여전히 무죄를 주장합니다. 앞으로도 무죄를 주장할 것입니다. 누구도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 주인 없는 흉상의 존재, 다시 말해 지금까지의 한국 사회가, 우리가 미처 의심하지 않은 박정희가 어떻게 존재하고 있었는지 드러낸 것은 죄가 될 수 없습니다. 한국 사회가 놓아두었던 공백에 빨간색 표식을 했다는 것, 그렇게 이 사회가 공백을 인식하고 채울 수 있도록 공론화했다는 것이 죄가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이 다소 발칙한 방법이었다고 한들, 다소 불편한 방법이었다고 한들 주인 없는 방치물에 락카를 칠하고 망치질을 한 것을 두고, 재물이 아닌 물건을 훼손한 것을 두고 죄를 물을 수는 없습니다.
본 법정은 형사소송법 제325조에 의거해 무죄를 판결하길 바랍니다.
(* 형사소송법 제325조(무죄의 판결) 피고사건이 범죄로 되지 아니하거나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때에는 판결로써 무죄를 선고하여야 한다. -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