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병에 걸린 고추밭, 농부는 수확을 포기하고 뽑았다
오창균
트럭에 큰 통을 싣고 가뭄이 심한 봄에는 물을 실어나르고, 잦은 비가 내린 여름에는 농약을 싣고서 뿌리는 광경을 자주 목격할 정도로 올해의 이상기후는 농부들을 지치게 했다. 해마다 보는 모습이고 겪는 현상이지만, 독한 농약을 뿌린다고 해서 병을 완전하게 막아내는 것 같지는 않다. 어쩌면 발생하지 않거나 막지 못할 병에 대한 막연한 불안함이 농약에 의존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작물에 피해를 발생시키는 바이러스는 날씨와 토양환경 등의 여러 가지 다양한 원인들에 의해 발생한다. 기후에 의한 것은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라서 방법이 될 만한 것이 없다. 그러나 '흙이 살아야 농사가 잘 된다'는 말처럼, 토양환경을 좋게 하는 방법들은 있다. 흙이 지력(地力)을 유지하고 토양생태계를 보호하려면, 화학비료와 농약은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화학물질은 흙과 함께 살아가는 생명체들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농사의 근본이 되는 흙과 연결된 다양한 생태계를 파괴하는 비료와 농약으로 키우는 농산물이 건강하고 안전할 리 없다. 비료는 작물의 특성과 성장속도에 상관없이 빨리 자라고 크게 만드는 성장촉진제와 같다. 자연에 존재하는 물질에 의한 자연스러운 성장이 아닌 화학물질이 투입되면 작물은 생육장애와 면역력이 약해져 병충해에 대한 방어력이 약해진다. 그것을 해결하려고 농약을 사용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 농업의 현실이기도 하다.
누구를 위한 규격화된 농산물인가"벌레 잡는 거야. 약 한번 뿌려, 손으로 언제 다 잡아낼 거야. 배추가 너무 안 크는데 비료 한 줌씩 넣어봐."
올해는 잦은 비로 달팽이가 자주 보인다. 한두 마리는 신경도 안 쓰는데 개체 수가 많아 배춧잎을 들춰가며 손으로 잡아내는 것을 보고 지나가던 농부가 하는 말이다. 농사에서 풀과 벌레는 피할 수 없다. 이들을 적(敵)으로 보고 모두 없애야 한다면 끊임없이 농약을 뿌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도 자연생태계에서 필요로 하는 생명체로 본다면 작물에게 큰 피해가 없는 정도에서는 공존해도 별 탈이 없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벌레먹은 흔적이 있는 농산물은 상품에서 제외되거나 하위등급으로 취급되어 제 값을 받지 못한다. 이러한 농산물 유통시장의 시스템에 의존하는 농사는 벌레가 보이거나 없더라도 짐작으로 농약이 뿌려지는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구조는 자연스런 농사로 다양한 크기와 맛을 가진 농산물을 소비자가 선택할수 없도록 유통시장에서 차단한다. 농민은 규격화 된 농산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불안함이 화학비료와 농약에 의존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