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미마을의 위령비 문구를 가린 연꽃 그림의 모습.
한베평화재단 홈페이지, 사진 이재갑
하미마을 위령비 위 연꽃이 49년 동안 진실을 가려왔던 것처럼, 오랜 기간 한국 사회에서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이라는 문제는 은폐되었다. 2018년 꽝남성 지역 학살 50주기를 앞두고 있는 지금, 우리는 아직도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에 대해 떳떳하지 못하다.
2015년, 한국에 한국군 민간인 학살 피해 생존자 응우옌떤런씨와 응우엔티탄씨가 방문했다. 일주일간의 한국행에서 그들은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를 알리기 위해 여러 일정을 소화했다.
참전군인들의 반대 집회를 뒤로, 어렵게 시작한 강연회에서 응우옌떤런씨는 "어떤 원한이나 증오감을 부추기려" 그 자리에 선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대신 그는 "저는 제 심장으로 말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한국군이 저지른 베트남 민간인 학살은 언제나 머리로만 이해되었다. 우리는 경제 성장이라는 명목으로 전쟁을 정당화했지만 전쟁 속에서 죽어간 사람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더 늦기 전에 머리가 아닌 '심장'으로 이 문제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다시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참전군인의 태극기작년 겨울,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 시위가 연일 일어나고 있는 와중에 나는 지하철에서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을 만났다. 작은 태극기를 손에 쥔 채 베트남전 참전 경험에 대해 큰 소리로 말하던 그는 태극기 집회 참여자이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의 동조를 받으며 퇴진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던 그는 연신 국가에 대한 사랑을 강조했다.
나는 그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다. 명분도, 도덕성도 잃은 전쟁인 베트남전에 참전한 사실을 자랑스러워하는 것도, 그가 박근혜 정부의 든든한 지지층이 된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참전 군인들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고, 그 혼란을 해소하기 위해 베트남 전쟁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다.
베트남에 가서 총을 쏴야했던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트라우마가 지워졌던 일, 그리고 그들이 다시 박근혜 정부의 지지자가 된 과정은 모두 '애국'으로 설명되고 있었다. 또 한 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이 저지른 베트남 민간인 학살이었다.
약 20년 전에 나온 <한겨레 21> 기사들을 읽으며 나는 50여 년 전에 있었던 전쟁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어 갔다는 것을 알았다. 한국 사람들이 과거의 학살을 숨기기 위해 마을을 불도저로 밀어버리고, 하미마을의 위령비를 연꽃무늬로 덮어 비문의 내용을 가렸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직도 많은 한국 사람들이 베트남전 당시 학살을 "거짓말"이라고 주장한다는 사실까지도 말이다. 문득 내가 배운 역사는 경제 성장 이데올로기와 반공주의, 그리고 힘을 가진 사람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한 거짓말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트남 전쟁을 경제 성장의 발판으로만 언급하는 역사 교육과, 전쟁을 '기념'하면서 이 문제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국가에 분노를 느꼈다.
이후 친구들과 함께 <연꽃아래>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우리 사회는 하미 마을의 위령비를 연꽃으로 덮어버렸지만, 우리는 그 연꽃 아래에 숨겨진 진실을 알리고 싶었다. 위령비를 가린 연꽃이 진실을 가리는 꽃이 아니라 평화의 꽃이자 베트남 국화라는 의미를 회복하기를 바랐다.
추모를 넘어서 평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