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대흥사 일지암 자우홍련사, 녹차 목 넘김이 유달리 좋습디다.
임현철
'일지암'으로 가는 길. 아내, 아직까지 썩 내키지 않은 표정입니다. 그 마음 알지요. 괜히 신세지고 눈치 보일까 싶은 게죠. 하지만 삶은 때로 스리슬쩍 얹혀 가야 하는 경우가 있습지요. 이건 중생의 특권이지요.
아내와 하룻밤 명분은 충분했습니다. 아내는 지난 9월 19일, 사랑하던 어머니를 저승으로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21일 발인 이후, 염려되던 아내의 우울증을 피할 방편이 필요했습니다. 게다가 장모님과 장인어른의 극락왕생까지 빌 좋은 기회. 고렇게 떠올린 게 일지암이었습니다. 일지암 법인 스님이라면 하루쯤 쉬어도 부담 없을 거 같은 예감이랄까.
하여, 아이들은 나 몰라라 한 채, 남편 자격으로, 아내를 반 강제적으로 일지암에 '보쌈'한 겁니다. 먼저, 스님께서 요청하신 믹스커피 등을 챙겼습니다. 그렇게 해남 행에 올랐습니다. 집 떠나면 좋다지요? 차츰 아내 얼굴에 화색이 돕니다. 이쯤이면, 여행의 일차 목적은 완수한 셈입니다. 기분을 회복한 아내, 조수석에서 재잘거립니다.
"여보. 난, 그동안 스스로 '황새'라기보다 '뱁새'라고 생각했어. '뱁새가 황새 쫓아가다가 가랑이 찢어진다'고 하잖아. 나는 가랑이 찢어지는 '뱁새'인 게 싫었어. 그런데 이제는 뱁새인 게 좋아."'아닌 밤중에 홍두깨'라 했던가. 아내 입에서 나온 적 없는 '뱁새 타령'입니다. 서민들이야 뱁새지요. 서민이 물질만능주의 세상에서 버텨내는 길은 남 흉내 내지 않고 묵묵히 자기 방식대로 살아야가야 가능합니다. 형편을 넘어서면 가랑이 찢어지니까.
'보쌈'한 아내, 뱁새의 참 행복을 터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