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창립 이후 그해 작성한 성명서 목록. 1984년에 열린 제2차 총회 보고 문건의 일부
민청련동지회
학원자율화조치와 제적학생 복학문제1983년 12월 21일, 이른바 학원자율화조치가 발표됐다. 권이혁 문교부 장관은 전국대학 총⋅학장회의에서 제적학생 1,363명에 대한 복교조치를 발표하고, 학원대책도 처벌 위주에서 선도 위주로 바꿀 것이라고 밝혔다. 이튿날에는 공안사건으로 구속됐던 172명이 석방되고 142명이 복권되었는데 그 중 131명이 학생운동으로 구속 수감되었던 학생들이었다.
제적생 복학 조치는 민청련 활동에 즉각적으로 큰 파급효과를 미쳤다. 민청련의 기반조직에 속한 회원들 중 대다수가 제적생이었기 때문에 이 복학 문제는 자신의 거취와 관련된 중대사였다.
그래서 복학 문제를 둘러싸고 민청련 각 조직 내에서 격렬한 토론이 일어났다. 집행위에서는 집행위원 모두가 민청련 상근 활동으로 복학이 현실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에 일단 집행위원들은 복학하지 않는 것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그리고 민청련 집행부는 복학 논의가 복학여부를 떠나 민청련 조직을 활성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판단했다. 왜냐하면 상대적으로 공개운동에 소극적이었던 제적생들도 대부분 이 복학논의에는 참여했고, 이 논의를 매개로 미조직 계반을 조직화하여 민청련과 연결시킬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판단이 옳았음이 곧 드러났다.
이렇게 복학논의가 점차 활발해지기 시작하는 시점에 어느덧 해는 기울어 연말이 다가왔다. 민청련은 당시 운동권 사람들에게는 낯선 모임인 대규모 송년회를 계획한다.
마리스타 송년회송년회는 12월 28일 서울 합정동에 있는 마리스타 수도원에서 열렸다. 2호선 전철 합정역에서 한강쪽으로 5분 정도 걸어가면 병인년(1864년) 천주교도들이 목이 잘려 순교한 절두산 성지가 나온다. 절두산 성지를 오른쪽에 두고 왼쪽으로 꺽어 3-4분 가면 마리스타 수도원이 나온다. 1973년 멕시코 수사들이 세운 수도원이다.
이곳은 2013년 통진당 이석기 의원이 당원들을 모아놓고 강연했다가 내란음모를 꾸민 것으로 기소되어 당 해산의 빌미가 됐던 곳으로 세간에 알려졌다. 그러나 이곳은 1980년대 민청련⋅민통련의 민주화운동과 인연이 깊은 장소였다. 6월항쟁 당시 민통련과 국민운동본부의 중요한 결정이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1983년 한 해가 저물어가는 12월 28일 저녁 7시 이곳 마리스타 수도원에서 민청련 합동송년회가 열렸다. 합동송년회라 이름 붙인 것은 민청련이 주관하는 송년회지만 민청련 회원들 외에 아직 민청련에 들어오지 않은 재야 민주청년들 모두를 초청한 송년회였기 때문이다. 마침 22일에 크리스마스 특사로 130여명의 청년 학생들이 석방되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석방환영회도 겸하는 모임으로 자리가 마련됐다.
민청련 집행부가 공안기관의 방해공작을 뚫고 사무실에 입주한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았고, 성명서 한 장에 김근태 의장이 연행되고 구류를 사는 등 전두환 정권 탄압의 서슬이 아직 시퍼런 때라 이 합동송년회를 개최하는 문제를 놓고도 기대(기별대표모임)에서는 논란이 많았다.
기대의 분위기는 신중론이 강했다. 아직 우리의 힘이 약한데 공개적으로 이렇게 큰 집회를 열었다가 저들에게 탄압의 빌미를 줄 우려가 있다는 것이었다. 또 신분이 노출될 수 있는 공개집회란 점도 우려의 이유였다.
그러나 김근태 의장을 비롯한 집행부에서는 이 송년회가 운동권의 분위기를 일신하고 민청련을 대외적으로 알리고 회원을 확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기대에서도 결국 집행부의 적극적인 설득에 따라 합동송년회를 열기로 결의하고, 각 출신학교별로 대대적으로 참석을 독려했다. 송년회 장소는 창립총회와 마찬가지로 보안을 고려해 시내 중심가에서 좀 떨어진 합정동 마리스타 수도원으로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