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색 나물추석이 끝나고 일주일 뒤, 시어머니 제사를 위해 삼색 나물을 무쳤다.
구진영
내가 시누에게 "엄청 교활한 애" "조심해야 할 애"로 규정된 사건은 시어머니의 제사 때문이었다. 남편은 수 차례의 차례상과 시어머니 제사상을 새 식구가 차리는 동안 연락 한 번 안 한 시누에게 "무례하다"라고 말했는데, 시누는 그에 대한 답변을 문자로 보냈다. 바로 이렇게.
"걔, 엄마 제사 진심으로 지내는 거 아니야. 엄청 교활한 애니까 조심해."시누이도 시어머니 제사에 참여해야 했다. 종교적인 이유로 참여하지 않았다면 그 일을 대신한 이에게 "고생했다"라는 말이라도 해야 했다. 나 혼자만의 주장이 아니다. 이유는 대법원 판례에서 찾을 수 있다.
2005년 7월, "성년 여성도 당연히 종중의 회원으로 편입된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있었다. "공동 선조의 후손 가운데 성년 남자만이 종중의 회원"이라는 관습법을 인정한 1958년의 대법원 판례가 47년 만에 깨졌다. 당시 대법원은 성인 여성도 종중원이 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로' 제사 방식에도 변화가 생겨 여성이 제사에 참여하는 것이 더 이상 특이한 일로 인식되지 않게 된 것'을 들었다.
시누가 자신이 속한 종중의 회원으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시어머니 제사에도 참여해야 한다. 제사를 지내겠다고 종중이 선택했기 때문이다. 종중의 회원이 아님에도 남편을 돕기 위해 시어머니의 제사를 지내고 있는 내게 "진심이 아니다" 같은 말로 깎아내릴 처지는 못 된다.
가부장제는 종말을 고했고, 여권은 이전보다 신장했다. 그러나 조선 후기 유교 문화는 망령처럼 남아 여전히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았다. 그리고 그 망령은 이 시대의 며느리들을 괴롭히고 있다. 이런 모순을 깨부숴야 할 시기에 나는 맏며느리가 됐다. 그리고 내가 그것을 깨부수려 하면 할수록 시가는(정확히 말하면 시누는) 계속해서 있지도 않은 권력을 사용하려 하고 있다.
"너도 남동생 있다면서"... 놀랍게도 막막한 시누의 메시지추석이 지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시가에서는 자아가 없어야 편해요"라는 며느리들의 푸념을 봤다. 동시에 며느리들의 고충을 털어놓는 기사에서는 "며느리 한 사람만 참으면 편한데 왜 못 참느냐"는 댓글도 봤다. 큰 다툼을 막기 위해 며느리가 참으라(혹은 참아야 한다)는 뜻이다.
나는 이런 류의 글을 읽고 나서 더욱 이 일을 꺼내놓고 얘기하기로 마음 먹었다. 치열하게 다퉈야 정리될 일이기 때문이다. 집안일이라고, 창피하다고, 숨기면 숨길수록 바로잡히지 않는다. 나도 감정싸움은 피곤하다. 하지만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시가와 며느리와의 마찰이 내 세대에서 끝나길 바라기 때문이다. 내 딸이 이런 갈등에 놓이기 원치 않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그동안 스팸 메시지함에 걸러져 읽지 못했던 시누의 메시지들을 정독해 읽어봤다. 지난 5월에는 이런 문자가 와 있더라. "너도 남동생이 있다면서, 입장을 바꿔 생각은 못하니." 정말 놀랐다. 시누가 나에 대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잘못 알고 있는지 가늠이 안 됐다. 어디서부터 바로잡아야 할지 막막하다. 우선 이 말부터 전해야겠다.
시누님, 저는 남동생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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