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내 기념품 가게
최성희
그런데 공항 내엔 나같은 장시간 대기자들을 위한 비교적 저렴한 수면실(Sleeping Lounge)이 있었으나 모두 만석이었고, 내부 호텔에서도 잠깐 쉬어갈 수 있는 저렴한 객실들 역시 매진이었다. 극심한 피로와 짜증으로 한참을 헤매다 그나마 긴 휴식용 의자들이 놓여 있는 곳을 발견해 거기라도 누워 눈을 붙여보려 했다.
두어 시간 쯤 겨우 잠을 청하고 나니 컨디션은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피곤하고 귀찮은 마음에 그냥 이대로 종일 누워있으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긴 시간을 공항에서 허비하다 간다는 게 너무 아까웠다. 이때가 아니면 언제 또 중동을 와볼 수 있겠나 싶어 억지로라도 기운을 차리고 공항 밖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남은 유로화 일부를 이곳 화폐로 환전한 후 간단히 출국수속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말로만 듣던 중동의 살인적인 더위가 기다리고 있었다. 작열하는 태양이 내리뿜는 열기는 그야말로 찜질방 불가마를 방불케 했다. 제일 먼저 아부다비의 대표적인 명소인 세계 다섯 번째로 크다는 그랜드 모스크(Sheikh Zayed Grand Mosque)행 버스를 타기 위해 매표기와 씨름하고 있자니, 고맙게도 근처에 있던 어떤 택시기사 한 분이 거기 가려면 5디르함(Dirham) 짜리 패스를 끊으면 된다며 친절히 도와주셨다.
부자나라답게 에어컨이 틀어져 있는 유리벽의 밀폐된 버스정류장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잠시 기다리고 있자니 다행히 A1 버스가 곧 도착했다. 30분 남짓 달린 후 버스기사가 알려준 곳에 내리니 휑한 도로 저멀리 새하얀 사원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이 엄청난 더위 속에서 거기까지 걷는 것이 보통 고행이 아니었다. 우연히 동행하게 된 두 중국인 아가씨는 미리 양산을 준비해 왔는데, 난 급한대로 허리에 두르고 있던 얇은 자켓을 뒤집어 쓴 채 땀을 뻘뻘 흘리며 목적지를 향해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