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전에서 한 미군 병사가 두려움떨고 있는 소년병을 팔로 감싸안고 있다.
ⓒ KWVA, NARA
한국전이 '잊혀진 전쟁'으로 낙인이 찍혔지만, 일부에서는 미국의 대외 군사정책과 관련하여 결코 '잊힐 수 없는 전쟁'으로 여긴다. 이 같은 주장을 하는 이는 <한국전쟁의 기원>(The Origins of the Korean War)이라는 저작으로 유명한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 대학 석좌교수다.
그는 미국의 대외정책이 '군사주의'로 전환하는 계기가 된 것은 한국전이었다고 주장한다. '군사주의'란 국제적인 이슈를 군사력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으로, 한국전을 계기로 미국은 항구적인 군사주의 국가가 됐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브루스 커밍스는 2010년에 출간한 출간한 <한국전쟁>(The Korean War: A History)에서 미국의 방대한 해외 군사기지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군산복합체가 미국의 패권주의의 원천이 된 결정적 계기는 2차 대전이 아니라 한국전쟁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한국전쟁이 미국의 군사주의와 이를 뒷받침하는 군산복합체를 정착시킬 정도로 '공헌'을 했다는 커밍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국제 정치와 군사 경제적 역학관계의 속내를 속속들이 알 리 없었던 미국민들에게 한국전은 여전히 '잊혀진 전쟁'이 되어 왔다.
그렇다면, 한국전이 미국 사회에서 '잊혀진 전쟁'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흔히 한국전은 베트남전 또는 2차대전과 비교하여 그 이유가 언급되곤 한다. 한국전 참전 미군 베테랑스협회(KWVA) 사이트와 현지 베테랑들과의 인터뷰, 그리고 한국전의 성격을 논한 문헌들을 종합해보면 여러 요인들이 연동되어 한국전이 잊혀진 전쟁이 될 수밖에 없도록 했다.
우선, 한국전 당시에는 라디오와 신문이 정보 제공의 주요 통로가 될 정도로 대중 미디어의 발달이 미진하여 베트남전에 비해 언론의 관심이 적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베트남전이 장기화하면서 반전 평화운동으로 확산하고 미디어의 지속적인 보도가 연동되면서 베트남전 기억을 오래 남도록 했다.
3년 1개월로 멈춘 한국전이 19년 6개월 지속한 베트남전에 비해 기간이 훨씬 짧았던 것도 잊혀진 전쟁이 되기 쉬웠다. 한국전쟁은 미국민들에게 두 번의 대전쟁과 긴 전쟁에 끼인 '막간 전쟁'이었다.
더구나 '정전'이라는 상태로 전쟁이 끝난 것도 한국전을 쉽게 잊게 한 요인이 되었다. 2차대전처럼 승리를 했다거나, 반대로 베트남전처럼 패배했을 경우 미국민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고, 이에 대한 정치 사회적 성찰이나 논의도 그만큼 길게 이어졌다. 미국이 종전 후 '같은 시기에 큰 전쟁은 한 건만 치른다'는 군사정책으로 전환한 것만 보아도 베트남전 패배에 대한 충격은 크고 오래 갔다.
베트남전은 긴 전쟁 기간에 비해 6만여 명의 미군이 전사하는 것으로 그쳤으나, 네이팜탄 피해자들과 PTSD(전후 외상성스트레스증후군) 등의 부상자들이 많았던데다 그 후유증이 장기간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2차대전의 미군 전사자 40만 명에 비해서도 한국전 전사자 수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한국전이 두 전쟁에 비해 상대적으로 '후유증'이 적었던 점에서 미국민들의 기억장치에서 쉽게 사라지게 한 요인이 된 것이다.
미국민들의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관심도가 애초부터 높지 않았다는 점도 한국전을 쉽게 잊게 한 것으로 보인다. 뭔가 조금은 안다는 미국인들에게 한국은 기껏해야 '조용한 아침의 나라'였고, 오랫동안 중국의 주변국가 또는 일본의 식민지였다가 강대국 덕분에 겨우 독립한 약소국이어서, 한반도에서 벌어진 어떤 역사적 사건을 진하고 강렬하게 오랫동안 기억할 만한 건덕지가 없었다.
한국전 당시뿐 아니라 최근 들어서도 미국민들의 한반도에 대한 관심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핵전쟁을 치를지도 모를 북한이 어디에 붙어있는지 모르는 미국인들이 대다수일 정도다. (최근 ABC 인기 프로그램 사회자가 길거리에서 만난 10여 명의 미국 시민들에게 세계 지도를 보여주며 '북한이 어디에 있는지를 짚어보라'는 질문에 단 한 사람도 정확하게 짚어내지 못했다는 사실이 미국 미디어의 화젯거리가 되었다.
▲ 지난 8월 8일 방영된 '지미 킴멜 라이브쇼(Jimmy Kimmel Live Show)'에서 북한이 어디에 있느냐는 인터뷰어의 질문에 단 한 사람도 북한의 정확한 위치를 짚어내지 못했다. 이들 가운데는 중동, 유럽, 캐나다, 심지어는 북극이나 남미 아랫쪽을 가리키는 사람도 있었다. ⓒ ABC.com
"노병은 사라질 뿐 죽지 않는다"?미국민들에게 한국전은 이래저래 기억할 거리가 별로 많지도 크지도 않은 '스쳐 간 전쟁'이었고, 이제는 잊혀진 전쟁이 되고 말았다. 잊혀진 것은 '역사적 사실'로서의 전쟁뿐 아니라, 20세 전후에 머나먼 땅에 지친 몸으로 들어와 몸을 던진 '용사'들이다. 인간에게 자신의 '존재'가 기억되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서러운 일인가. 이런 경우, 존재가 잊혀진다는 것은 '가치'까지도 잊혀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한국전을 총지휘하다 트루먼 대통령과 마찰을 빚어 해임당한 더글러스 맥아더가 "노병은 결코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Old soldiers never die. They just fade away)"라는 멋진 말을 남겼다. '외형은 없어지지만 존재 가치는 영원히 남게 된다'는 뜻일 터이지만, 한국전 노병들은 사라질 뿐 아니라 죽어가고 있다.
그래서일까. 한국전 베테랑들은 자신들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고 싶어한다. 그들은 최소한 가장 지치고 힘든 시기에 '국가에 충성했다'는 것과, '자유 진영을 위해 싸웠다'는 결과론적 대의명분이 기억되기를 바라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노구를 이끌고 휠체어를 밀고 매년 한국전 행사에 참가하여 애써 김치와 불고기를 먹는 것조차 존재 가치의 확인을 위한 몸짓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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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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