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광장의 세종대왕 동상.
김종성
"수고하세요"라는 말은 우리가 흔히 쓰고 자주 듣는 말이다. 특히 헤어질 때 인사말로 많이 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남발해서는 결례가 되는 말이다. '수고하다'는 '일을 하느라 힘을 들이고 애쓴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어렵고 고된 일, 즉 고생을 상대방에게 하라고 권할 수 없는 말이다. 사전적 의미와 실생활에서 쓰는 것이 다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떤 단어를 많은 사람이 관용적으로 많이 써서 사전적 의미와 다르게 쓰일 수 있지만, 잘못된 표현을 사람들이 많이 쓴다고 해서 그것이 올바른 표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좋고 친근한 인사말도 많은데 하필이면 '고생'하라는 악담을 한단 말인가.
직장에서 윗사람이 아랫사람들에게 "수고하세요"라는 말을 쓰는 것은 자연스럽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일 열심히 하라고 독려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권장할 인사말은 아니다. 그 상황에 맞는 느낌이 좋고 어감도 좋은 작별인사 말을 생각하여 활용하면 좋을 것이다. 최악의 용법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수고하세요" 하는 것이다. 나이도 어리고 직급도 낮은 사람이 윗사람에게 '일 열심히 하라'고 명령하는 것과 같다. 상당히 예의에 어긋나는 말이다. 하지만 과거형인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는 표현은 괜찮다. '고생 많으셨지요?'라는 위로의 뜻으로 해석된다. 일을 하고 들어오실 때 쓰면 적절하다.
"행복하세요", "건강하세요"도 어법에 맞지 않은 대표적인 표현이다. '건강하다, 행복하다'는 형용사이다. 형용사는 청유형이나 명령형으로 활용할 수 없다. 명령형으로 쓸 수 있는 말은 '가다, 먹다, 일어나다' 따위의 동사이거나, '공부, 일, 운동' 따위처럼 '-하다'가 붙어서 동사형으로 쓰이는 낱말이다. 그러므로 이 경우에는 "행복하게 지내세요" 하든지, "건강하게 계십시오"처럼 말해야 한다. 다만, "행복하세요?" 또는 "건강하십니까?"라고 물어보는 말, 곧 의문형으로 쓰는 것은 올바른 표현이다.
또한, "행복하소서!"는 어법에 어긋나지 않는다. '-소서'는 간절한 기원을 나타내는 어말어미이다. '-하시기를(-되시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뜻의 종결어미가 '-소서'이다. '-소서'는 명령형 어미가 아니므로 형용사에도 붙을 수 있다.
'다르다'와 '틀리다'도 잘못 사용하는 사람들이 뜻밖에 많다. 둘은 명백하게 서로 '다른 것'이다. '다르다'는 '같지 않다'는 뜻이며, '틀리다'는 '바르지 않다, 옳지 않다'는 뜻이다. "나와 당신의 생각은 틀리다"라고 말하면 상대방이 '옳지 않다'고 비난하는 뜻이 된다. 내 생각과 내 사고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옳지 않은 것은 아니다. 우리 속담에 "아 해 다르고 어 해 다르다"라는 말이 있다. 같은 내용의 이야기라도 이렇게 말하여 다르고 저렇게 말하여 다르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속담이다. 속담에 나타난 그대로 '아'라는 모음을 쓰는 것과 '어'라는 모음을 쓰는 것에 따라 어감뿐만 아니라 의미까지도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무심코 저지르는 말실수를 조곤조곤 설명하면 대다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을 한다. 그런데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입으로는 잘 안 되는 말도 상당하다. 언어 규칙과는 괴리가 있지만 실생활에서 많이 쓰인다는 이유로 덩달아 쓰는 경우도 있다.
남편을 '오빠' 또는 '아빠'라고 부르는 여자를 가끔 본다. 대단히 잘못된 호칭이다. 남편에 대한 호칭어, 지칭어에 어려움을 느끼는 아내들이 많은 것 같다. 결혼 전의 호칭을 결혼 후에도 그대로 사용하는 사람도 있는데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듣기에도 거북스럽고, '윤리 도덕을 모르는 사람' 또는 '무식한 사람'이라는 비아냥을 들을 수도 있다.
'아빠'는 유아어이고, '아버지'는 자기 아버지를 직접 부르거나 지칭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아버님'은 남의 아버지를 직접 부르거나 지칭할 때, 며느리가 시아버지를 부르거나 가리킬 때, 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쓰는 말이다. 그런데 이 세 가지 호칭, 지칭이 제대로 사용되지 않는 경우가 아주 많다.
성인이 되어 시집가고 장가간 사람도 '아빠'라는 유아어를 서슴없이 쓴다. 심지어는 며느리가 깍듯이 모셔야 할 시아버지를 '(시)아빠'라고 부르기도 한다. 철들 나이가 되면 자기 아버지는 '아빠'도 '아버님'도 아닌 '아버지'로 불러야 한다. 이런 구별도 하지 못하면 그야말로 철부지다. 성인이 되면 의젓하게 어른 말을 써야 한다. 성인이 되어서도 유아어를 쓰면 생각이나 행동에서 어린이티를 벗어나지 못하는 일이 많다. 제대로 된 호칭은 예절의 기본 요소이다. 자신과 상대편의 나이, 위상, 대화 상황에 걸맞은 호칭을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야채=채소? 이렇게 다릅니다손윗사람에게 반말투로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버릇없고 예절을 모르는 것은 가정교육에 문제가 있다는 증거이다. 모든 교육의 시작은 가정에서부터 비롯된다. 문제가 있는 아이 뒤에는 문제를 가진 부모가 있다.
요즘 급변하는 세태 속에서 경어법의 관습이 사라져 가고 있는 현상도 심각하지만, 그나마 사용하고 있는 존댓말도 그 원칙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존대를 하지 않아도 될 경우에 높임말을 쓰고, 높임말을 안 써야 할 대목에서 필요 이상의 존댓말을 쓰는 경우가 자주 눈에 띈다.
"커피 나오셨습니다. 뜨거우시니 조심하십시오." 커피숍에서 종종 들을 수 있는 극존칭 어법이다. 듣기에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틀린 말이어서 더 문제다. '커피'가 주어인 문장에 '나오시다'나 '뜨거우시다'라는 극존칭을 쓰는 건 어울리지 않는다. 말끝에 무조건 '-세요'나 '-시'를 붙이면 다 존칭이 되는 줄 아는 사람이 뜻밖에 많지만, 상품을 높이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자고로 과공은 비례라 했다. 지나친 높임말 사용은 오히려 역효과를 줄 때가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편집자가 원고를 검토할 때는 그 내용을 의심하고 봐야 한다. 술술 읽히는 문장도 내용이 엉터리일 수 있다. 대충 읽으면 말짱해 보이는 글이 유심히 보면 비과학적이거나 문법에 어긋난 경우가 흔하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는 일본식 용어나 구문, 일본식 조어, 일본식 한자어를 그대로 직역해 놓은 듯한 일어 번역투와 영어 직역투 문장이 수두룩하다. 번역문의 영향은 우리 사회 지식인들이 쓰는 말과 글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런 사례는 워낙 많으므로 일일이 바로잡을 수도 없는 지경이다.
없어도 그만인 일본식 조어 '-적(的)', 일본어 주격조사 'の'의 남용 등은 심각한 수준이다. 하지만 조사 '-의'를 쓰면 문장이 짧아지고 간결해지는 효과가 있다. 이미 '-의'를 널리 쓰고 있으므로 남발하지 말고 꼭 쓸 곳에 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포용할 것은 포용하고 바로잡을 것은 바로잡는 융통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말을 영어 직역투로 쓰는 대표적인 기형 서술어가 '-을 갖는다'는 표현이다. 우리말에서 잘 어울리는 서술어가 있음에도 '가지다', '갖다'를 남용하는 것은 영어의 'have+명사'를 '가지다' 또는 준말인 '갖다'로 단순 번역하는 데 익숙한 탓이다. 가지다는 소유의 개념 외에도 여러 가지 뜻을 지니고 있어 두루 쓸 수 있는 단어이긴 하지만, 잘 분별해서 써야 한다. 전시회나 전람회, 박람회, 품평회, 공청회 등은 '한다', '연다', '개회한다'고 하는 것이 옳다. 워낙 난무하는 영어 번역체에 익숙하다 보니 오히려 우리말이 어색해졌다.
출판할 책의 원고 교정을 볼 때 문법과 맞춤법이 많이 틀린 경우는 두통거리다. 보통 빨간 펜으로 교정을 보는데, 교정지가 빨갛게 물든 경우가 많다. 편집자들 사이에서는 여기저기 울긋불긋 빨가면 '딸기밭 교정'이라고 하고, 그 정도가 심하면 '피바다 교정'이라고 한다. 대부분 저자는 편집부 교정에 고마움을 표하지만 가끔 민감하게 반응하는 저자도 있다.
인간의 보편적인 특성 중 하나는 잘못을 지적하면 기분 나빠한다는 것이다. 한번은 '야채(野菜)'를 '채소'로 교정했더니 저자는 원고대로 '야채'로 해달라고 강하게 주장했다. 자기는 그렇게 배웠다는 것이다. 야채(野菜)는 야생의 상태로 자라는 '들나물'을 의미하고, 채소(菜蔬)는 밭에서 인위적으로 기르고 관리한 식물을 일컫는 말이다.
야채가 흔히 사용되는 이유는 일본식 표현을 그대로 여과 없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본디 일본에서도 '채소(蔬菜 そさい)'와 '야채(野菜 やさい)'를 구분하여 썼으나, 그들의 상용한자에서 '나물 소(蔬)'자가 빠지면서 산나물과 들나물과 채소를 통틀어 '야채'로 쓴 것이다. '굴착기'도 마찬가지이다. 일본의 상용한자에 착(鑿)자가 없어 삭(削)을 대용하여 굴삭기가 되었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포크레인'은 그 기계를 만든 프랑스 회사의 이름이다.
한번은 "영어는 되고 일본어는 안 됩니까?" 하면서 따지는 저자를 만났다. 글로벌 세상 어쩌면서 영어가 난무하고 동사무소도 '센터'라고 부르는 세상인데, 많은 국민이 저항감 없이 늘 사용하는 단어를 일본어 찌꺼기라고 물고 늘어지는 진짜 의도는 무엇이냐고 묻는 것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외래어 수용에 편파적인 면이 있다. 영어에는 관대하고 일본어에는 상대적으로 인색하다. 여기에는 일제강점기 때 우리 민족을 고통받게 했던 일본에 대한 복잡한 심경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우리 사회는 그 시절을 겪지 않았더라도 트라우마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뜻밖에 우리말로 알고 있었던 단어가 일본어에서 차용된 것이 많다. 예컨대 '가방', '구두', '가족'도 일본어에서 차용된 말이라고 한다. 우리말에 깊이 뿌리를 내린 단어가 하도 많으므로 일제 식민 잔재 청산은 참으로 어려운 문제이다. 부지불식간에 일본말을 많이 쓰고 있다. 어려서부터 알게 모르게 번역투의 글에 익숙해 있기에 잘못 사용하거나 곡해하고 있는 것들이 많다.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를 보며 전부라고 판단하는 오류도 적지 않다. 이 글에서도 몇 번 사용한 '경어(敬語)'라는 단어도 일본어에서 온 말이니 '높임말' 또는 '존댓말'로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보았다. 너무 지나친 감도 있지만 우리말을 찾고 지키려는 그런 노력은 평가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순수한 의도에서 국어사전이나 간행물의 잘못된 부분을 자주 지적하는 그런 분들 덕분에 바로잡힌 부분이 적지 않다. '벤토'가 '도시락'으로, '와루바시'가 '나무젓가락'으로 바뀌었듯이 우리가 쓰고 있는 일본말을 제대로 알려주기만 해도 한글 순화에 큰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고수부지', 신문과 방송이 퍼뜨린 잘못된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