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산소 가는 길에서 받은 큰 위로

[포토에세이] 물골 한가위 들녘에서 만난 가을

등록 2017.10.04 17:34수정 2017.10.04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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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 주렁주렁 대추가 익어가고 익었습니다. 여름의 장마와 무더위로 작황을 좋지 않지만, 남은 것들은 나름나름 맛나게 익었습니다.
대추주렁주렁 대추가 익어가고 익었습니다. 여름의 장마와 무더위로 작황을 좋지 않지만, 남은 것들은 나름나름 맛나게 익었습니다.김민수

추석을 맞아 부모님의 묘소를 찾았습니다. 사람이란 평생 배우고 깨우쳐야 한다는 사실을 이번 추석에 배웠는데, 그 중 한 가지가 '부모님 없이 맞이하는 명절'에 대한 것입니다. 지난 5월 아버님이 2년 전 먼저 돌아가신 어머님의 품에 안기신 후 첫 번째로 맞이하는 추석입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추석이면 우리는 이런저런 선물과 음식을 준비하고, 음식을 마련해서 아버님과 함께 나누고, 아버님도 자녀들에게 복을 빌어주셨습니다. 올해도 음식을 준비했지만, 더는 그 음식을 아버님과 함께 나눌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헛헛합니다.

뚱딴지(돼지감자) 최근 건강식품으로 각광을 받고있는 돼지감자의 꽃이 만발합니다.
뚱딴지(돼지감자)최근 건강식품으로 각광을 받고있는 돼지감자의 꽃이 만발합니다.김민수

그런 헛헛한 마음을 가지고 찾은 부모님의 묘지, 묘지를 올라가는 길에는 몇 해 전에 어머님과 아버님이 심어 놓으셨던 뚱딴지가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부모님의 사랑은 끝나지 않고 전해지고 있는 것이겠지요.

지금 저 노란 꽃을 피운 돼지감자(뚱딴지)의 내력을 거슬러 올라가면 어머님과 아버님의 손길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위로가 됩니다. 부모님의 흔적이 여전히 이 땅 여기저기에 남아 있으며, 그분들의 피가 흐르는 나를 포함한 후손들이 여전히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큰 위로가 됩니다.

오미자 다섯가지 맛을 간직하고 있는 오미자, 더는 익을 수 없을 정도로 빨갛게 익었습니다.
오미자다섯가지 맛을 간직하고 있는 오미자, 더는 익을 수 없을 정도로 빨갛게 익었습니다.김민수

그랬습니다. 부모님 살아생전에 함께 오미자를 따기도 했고, 오미자를 수확해서 담근 오미자 차를 함께 나누기도 했습니다. 올해 붉게 익은 저 열매는 전혀 새로운 열매지만, 하 아래 새 것이 없다는 말씀의 현실을 봅니다.

저 작은 열매 한 송이, 송이까지 갈 것 없이 한 알에도 과거와 오늘과 내일이 모두 들어 있는 것입니다.


산초 산초가 주렁주렁 열렸습니다.
산초산초가 주렁주렁 열렸습니다.김민수

이제 야생의 열매입니다. 추어탕하면 빠질 수 없는 산초, 저는 추어탕에 넣어 먹는 산초보다는 이른 봄 연한 이파리를 따서 된장에 찍어먹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어느 봄날, 연한 산초잎을 따서 삼겹살에 곁들여 된장을 찍어 향긋한 산초의 내음을 부모님들과도 나누었습니다.

어떤 나무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제법 큰 나무였으므로, 저 나뭇가지 어딘가에 올라 왔던 새순이었을 것입니다. 가을이지만 아직도 연한 이파리가 있어 하난 따서 씹어도 보고, 잘 익은 산초 열매를 따서 씹어도 봅니다.


취 아침저녁으로 쌀쌀하니 머지않아 꽃이 지겠지만, 여전히 싱그럽게 피어났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하니 머지않아 꽃이 지겠지만, 여전히 싱그럽게 피어났습니다.김민수

수리취 수리취와 민들레 씨앗입니다.
수리취수리취와 민들레 씨앗입니다.김민수

취는 종류도 많습니다. 이번 가을에는 그냥 취, 수리취, 참취, 곰취를 만났습니다. 그들은 꽃보다 향기가 좋은 친구들이고, 꽃보다는 이파리가 더 향기로운 친구들입니다.

묘지 정리를 하면서 평소에 어머님이 좋아하시던 꽃들이 피어 있어 좋았습니다. 취며, 구절초까지 피어 있었습니다. 일일이 낫으로 정리하는 것이 쉽지 않아 일꾼을 불렀습니다.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에 취는 모두 베어져 버렸습니다.

그에게는 그냥 잡초로 보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미리 인지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내년에 다시 피어날 것입니다. 그것이 스스로 위로할 수 있는 최선인 듯 합니다.

여뀌 분홍빛이 선명한 여뀌, 작지만 옹기종기 모여 하나의 꽃입니다.
여뀌분홍빛이 선명한 여뀌, 작지만 옹기종기 모여 하나의 꽃입니다.김민수

닭의장풀 꽃도 지고, 열매도 맺고, 이젠 단풍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닭의장풀꽃도 지고, 열매도 맺고, 이젠 단풍이 들어가고 있습니다.김민수

신비한 빛의 꽃이라고 저는 말합니다. 닭의장풀처럼 파란색 꽃은 흔하지 않습니다. 그저 들판에 무성하게 피어나니 별반 관심을 받지 못하지만, 단연코 모든 꽃들의 색깔 중에서 가장 신비한 빛을 간직한 꽃을 찾으리면 '닭의장풀'입니다.

이제 그도 가을을 몸에 새깁니다. 단풍이 들어가는 것이지요. 꽃이 없어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 그것은 큰 깨우침을 줍니다. 나도 내가 피워낸 꽃이나 열매같은 것들을 다 잊은 후에도 여전히 아름답고 당당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숙연해집니다.

노인장대 훌쩍 키가 큰 노인장대가 꽃이 무거워 땅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노인장대훌쩍 키가 큰 노인장대가 꽃이 무거워 땅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김민수

미꾸리낚시 낮은 곳에서부터 단풍이 들기 시작합니다. 미꾸리낚시의 이파리는 이미 단풍이 완연합니다.
미꾸리낚시낮은 곳에서부터 단풍이 들기 시작합니다. 미꾸리낚시의 이파리는 이미 단풍이 완연합니다.김민수

노인장대는 해마다 큰 키로 피어나고, 주얼주렁 매달린 탐스러운 꽃은 축축 늘어집니다. 이름때문에 드는 생각이겠지만, 무거운 꽃이 축축 늘어진 것이 마치 구부정하게 허리굽은 노인들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허리가 구부정하게 되도록 고생하셨던 어머니, 구부정한 허리가 추하게 보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구부정해진 어머니의 쇠약한 육체를 보면서 어머니의 뼈와 살을 먹고 살았으므로 대충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살아 왔습니다.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젠 나도 어느덧 중년을 넘어서 노년을 향해 가고 있는데, 내 나이 부모님들처럼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지는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아직 가을은 완연하진 않습니다. 몇몇 일년초들 중에서도 미꾸리낚시는 완연하게 단풍이 들었습니다. 땅으로부터, 낮은 곳으로부터, 약한 것들로부터 단풍이 듭니다. 어쩌면, 역사의 서막도 저 아래 약한 것들로 지칭되는 민중으로부터 시작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추석입니다.
가을 들판, 부모님 묘지 가는 길에 만난 것들로부터 큰 위로를 받습니다.

#미꾸리낚시 #가을 #물골 #오미자 #수리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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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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