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70년대 완도극장은 군내 최고의 문화공간으로 다양한 연령층이 부담없이 만나서 여흥을 즐겼다고 한다.
완도신문
완도극장의 흥행대박은 신영균·문희 주연의 1970년 개봉한 '미워도 다시 한번'이었다. 영화의 극중 아들과 엄마의 애절한 이별장면이 관객들의 마음을 파고 들어 극장은 입석까지 관객으로 가득 찼었다고 서씨는 아직도 당시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다.
완도극장의 영화상영은 주로 야간에 이루어졌다. 학생들의 단체관람은 수업이 끝나는 오후시경에, 일반민 대상의 영화는 저녁 7시나 7시반에 상영을 시작했다. 완도극장은 당시 공짜영화를 관람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영화상영 후 일정시간이 지나면 출입문을 개방했다.
또한 완도극장은 서울에서 다녀가지 않은 배우가 없을 정도로 영화배우와 가수들의 쇼 단체 공연이 많았다고 한다. 당시 '지난 가던 개도 500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수산물 수출로 호황을 이뤘던 완도는 흥행을 원하는 쇼 단체가 선호하는 지역 중의 하나였다.
쇼 단체를 따라 완도극장을 방문한 연예인들은 이예춘, 신성일, 신영균 등이었으며 매년 가수 남진이 다녀갔다. 완도극장을 가장 많이 찾았던 사람은 배우 박노식과 가수 하춘화였다. 이들의 공연은 매번 극장 만원 사례를 기록했는데, 한마디로 "오면 돈벌어 갔던" 연예인들이었다.
1966년 신축 개관 이래 대략 15년의 세월동안 운영이 좋았던 완도극장은 TV가 보급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관람객 감소와 고가의 필름 대여료, 그리고 직원 월급 등 극장 운영의 문제가 예전과 달리 만만치 않았다고 '호남의 극장문화사(영화 수용의 지역성)'에는 기록돼 있다.
이책에는 운영이 어려워진 완도극장이 결국 1981년 폐관하고, 건물을 임대해 주다가 결국 다른 사람에게 완도극장을 넘기게 됐다고 완도극장의 마지막을 담고 있다. 완도극장이 있던 자리에는 현재 '청해진사우나' 목욕탕 건물이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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