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소비는 줄고 풍년이 오히려 걱정인 시절을 맞았다. 9월 29일 파주 오금리
이안수
벼가 고개 숙인 황금들녘을 보면 고향이 생각나고 그 고향은 새벽부터 저녁까지 이어진 아버지의 지독한 노동으로 기억됩니다.
미리 물에 담근 볍씨로 못자리하는 것을 시작으로 모내기, 김매기, 물관리 그리고 추수까지, 추수는 다시 베기, 말리기, 단묶기, 옮기기, 탈곡, 도정까지 아버지의 노동은 한순간의 끊어짐도 없이 촘촘하게 이어졌습니다. 낫과 지게, 멍석, 가마니는 모두 아버지의 육신을 소비하는 일이었습니다.
밥상 위의 흰쌀밥 한 알이 봄부터 가을까지의 모진 노동의 결과임을 아는 나는 밥공기에 밥 한 알 남기는 것은 허리 굽어 굳은 아버지의 노동을 모욕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이 노동을 알 턱이 없는, 대처에서 나고 자란 내 아들딸들이 밥공기의 밥 한 알 남기는 것조차 나는 용납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