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뤄지는 2015년 11월 12일 오전 서울 청운동 경복고에 마련된 시험장에서 수험생들이 책을 펴놓고 마지막까지 하나라도 더 기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권우성
고3은 교육과정조차 무시되기 일쑤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은 분명 고1부터 고3까지 연계되어 있지만, 실제 운영에 있어서는 고3은 늘 예외다. 학사일정도 별도로 진행되고, 수업 방식과 시험 일정도 다르며, 심지어 체육대회 같은 단체 행사조차 고1, 고2 후배들과 날짜가 다르거나 단축돼 운영된다. 고3의 일상이 모두 대학입시 하나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수업은 죄다 수능을 대비해 문제풀이를 반복하는 것들뿐이고, 수능에 출제되지 않는 교양 교과는 교육과정에 배정돼 있다 해도 이름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개 수능 교과에 할애되거나 자습 시간으로 운영되기 일쑤다. 동아리 활동과 봉사 활동조차 고3에겐 '아까운' 시간으로 치부되며, 창의적 체험 활동의 일환이라는 그 취지조차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다.
내신을 좌우하는 교내 시험은 더욱 가관이다. 전형 일정이 빠듯하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대학에서 고3 1학기까지의 성적만 반영하다 보니, 2학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기간은 아이들에게 차라리 '휴가'다. 일찌감치 재수를 고려하는 경우라면 모를까, 아직 수능을 치르지 않은 아이들에겐 너무 먼 미래의 일이다. 대부분의 고3에게 2학기 시험은 그저 '찍기 테스트'일 뿐이다.
대개 고3의 2학기 중간고사는 한여름인 8월에, 기말고사는 늦어도 9월이면 끝난다. 고1, 고2 같으면 중간고사가 시작되지도 않은 때에 기말고사까지 마무리되는 셈이다. 학교생활기록부에 성적이 입력되어야 하니 필요한 것일 뿐, 과목별 성취수준과 기준은커녕 범위조차 제대로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시험이 치러지게 되는 셈이다. 한마디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다.
2학기의 시작인 9월에 시험을 비롯한 모든 학사일정을 끝내려는 건, 사실 고3을 위한 학교 나름의 '배려'다. 수능이 매년 11월 중순에 잡혀 있다 보니, 아이들이 그동안 공부한 것들을 최종적으로 정리할 시간을 주자는 취지다. 대략 한 달 반 동안 아무런 '방해'를 받지 말고 수능 준비에 '올인'하라는 것이다. 이는 특정 학교만의 문제가 아닐 뿐더러,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교육부나 교육청이 지금껏 이를 문제 삼은 적 없다.
그렇다고 고3의 1학기는 멀쩡한가. 5월 초 중간고사가 마무리되면 곧장 수시모집 준비 체제에 돌입된다. 담임교사는 물론, 교과 담당 교사들까지도 고3 아이들의 학교생활기록부 작성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고3 담임교사의 진학 지도 업무란 수능 대비를 위한 문제풀이 수업과 아이의 희망 대학과 학과에 따라 맞춤형 학교생활기록부를 작성하고 자기소개서를 첨삭 지도하는 게 전부다.
학교생활기록부 종합전형이 대세가 된 이후론 교실에서 '가르치는' 일보다 교무실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기록하는' 게 교사로서 훨씬 더 중요한 일이 돼 버렸다. 한 아이는 고3 수업이 학교생활기록부 작성을 위한 상담 아니면 자습시간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로지 대학입시에 고등학교 교육과정 전체가 철저히 종속되어 있다 보니 온갖 편법과 파행이 난무하고 있는 셈이다.
수능을 앞두고 긴 연휴로 인해 더욱 불안하다는 고3 아이들을 보면서, 온 사회가 갑론을박하고 있는 교육개혁이라는 화두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자사고와 외고 폐지도 좋고, 수능개편안과 고교학점제도 다 좋지만, 당장 고3에게도 추석 연휴를 함께 누릴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소소할지언정 교육개혁의 시작 아닐까 싶다. 서글프지만, 올해도 추석날 성묘 대신 독서실을 찾는 고3 아이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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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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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계획이 있겠어요?" 고3에겐 쓸모없는 10일 연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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