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그림
삼인
선거가 끝나자 사람들이 죽어갔다 그래도
나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었고 아내와 아이들은 거기에다 웃으며 방울들을 달았다드라마 속 사랑은 여전히 돈지랄이었고 걸그룹의 자태는 아슬아슬하게 매혹적이었다뉴스는 사람들이 몰라도 될 것들만 보여주었고 (그날 이후) 시집 <시>(삼인 펴냄)를 읽으면서 시 한 자락을 둘러싼 이야기를 곰곰이 돌아봅니다. 책이름부터 더도 덜도 아닌 "시" 한 마디인 시집을 읽으면서, 소치기 아재한테는 언제나 소가 시일 뿐 아니라, 바로 이 소한테서 숱한 이야기를 길어올리는 하루가 흐른다고 느껴요. 이 시집을 읽으면서 시를 헤아리는 우리로서는 우리가 저마다 다른 곳에서 저마다 다른 삶을 짓는 마음으로 시를 받아들이겠지 하고 생각합니다.
책 살 돈으로 그 짓을 하고자유와 해방을 외쳤다간신히 졸업하고 폐인이 됐다시를 쓰고 또 썼다소도 키웠다마흔이 가까워아내를 만나기 전 배운 베트남 첫 말은안녕이었다 (청춘)
시집 <소>를 써낸 아재한테는 베트남에서 온 곁님이 있고, 둘 사이에서 낳은 아이가 있다고 해요. 이러한 집살림도 고스란히 시로 태어납니다. 그리고 열한 살 된 딸아이가 문득 아버지한테 여쭌 말 한 마디가 새롭게 시로 일어나요.
그러니까 시란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란 삶'이면서 '삶이란 시'라고 할까요. 여기에 '시란 사랑'이면서 '사랑이란 시'라고 할 만하지 싶어요.
스스로 사랑하는 삶이 시로 태어납니다. 스스로 시로 쓰고픈 이야기가 언제나 사랑스러운 삶으로 흐릅니다. 사랑하는 곁님을 둘러싼 이야기가 시로 거듭나고, 이 시를 되새기면서 삶을 새롭게 가꾸어요. 사랑하는 아이하고 주고받은 이야기가 시로 피어나며, 이 시를 곱새기면서 삶을 싱그럽게 짓습니다.
차를 몰고 가는데 이제 열한 살 된 딸아이가 물었습니다아빠, 돈이 중요해? 동물이 중요해?둘 다 중요하지아빠, 사람이 없으면 돈도 필요없잖아 (철학)열한 살 딸아이는 아버지한테 삶을 물었습니다. 사랑도 함께 물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함께 물어요. 아버지는 열한 살 딸아이가 묻는 말에 제대로 대꾸를 못한 채 얼버무리지만, 아이는 똑부러지게 말하지요. 이러는 동안 아버지는 아이한테서 시를 배웁니다. 따로 스승을 두어서 시를 잘 쓴다기보다, 곁에 사랑스러운 숨결이 있기에 이 사랑스러운 숨결이 문득 건네는 이야기를 받아서 시를 조용히 씁니다.
돈은 어디에 쓸까요? 돈은 얼마나 써야 할까요? 돈을 얼마나 벌여야 할까요? 번 돈은 어떻게 쓰면 즐거울까요?
어쩌면 우리는 이 대목을 늘 잊는지 모릅니다. 아이를 잘 가르치고 싶어서 돈을 많이 벌어야 하지 않을 수 있어요. 아침 낮 저녁으로 아이하고 부대끼면서 모든 삶하고 살림을 즐거이 가르칠 수 있어요. 맛나거나 대단한 밥을 멋진 밥집에서 사다가 먹는다고 배부르지 않아요. 라면 한 그릇이라 하더라도 노래하면서 끓이고 웃음을 지으면서 먹으면 배부를 수 있어요.
시를 쓰면서 사랑이 됩니다. 사랑으로 되살아나면서 시를 씁니다. 시를 쓰면서 씩씩한 사람 하나로 다시 섭니다. 씩씩한 사람 하나로 다시 서면서 새롭게 시를 씁니다.
시
조인선 지음,
삼인,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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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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