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수 사장이 가게 안에서 상품들을 정리하고 있다.
<무한정보> 이재형
"처음엔 반대를 하셨죠. 넥타이 매고 깨끗하게 살 수 있는 직장을 버리고 왔으니... 하지만 곧 받아들이셨어요. 아들이 하나 밖에 없으니까. 지금 생각해도 장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1979년 상설시장이 생겼고, 지금의 점포 12평을 분양받아 가게를 옮겼다. 그리고 20여년 넘게 성업을 이뤘다. 당시만 해도 마을공동체가 살아있고 대가족사회여서 각종 잔치가 풍성했다. 혼인, 환갑, 장례 등 관혼상제를 집에서 치르던 시절이었으니, 건어물 등 각종 식재료들이 얼마나 많이 팔렸겠나.
"호시절이었죠. 도고, 선장, 청양까지 잔치음식재료 배달을 했으니까요. 두 세집 잔치거리를 한 번에 배달했을 정도였죠."돈도 잘 벌었고, 2남1녀를 낳아 모두 대학 가르치고 '재금'나는데 보태줬으니 누구보다 아버지 역할을 다 했다. "큰 아들은 서울대, 둘째 아들은 고려대를 나와 좋은 직장을 잡았고, 딸은 선생을 하고 있으니 더 바랄 나위가 없다. 그야말로 보람있는 결실"이다. 3층 건물도 지어 노후도 안정됐다.
김 사장은 그러면서도 아직까지 가게를 열고 손님을 맞이하는데 조금도 소홀함이 없다. 세상이 변해 찾아오는 손님이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줄어들었지만, 슈퍼는 여전히 꼿꼿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