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지고 다시 모이는 길, 길이 그렇게 나있는 이유

[두 바퀴로 만나는 세상 8] 부산까지 580Km를 완성하다

등록 2017.09.26 11:14수정 2017.09.26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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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왜 그렇게 생겼을까?  굽이치다가 이내 내닫고, 고갯길 정상에 다다를 것 같다가도 다시 내뺀다. 갈라지고 만나는 수많은 길 위를 걷는다. 우리가 향하는 목적지가 그 길 끝에 있을 것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우리는 그 길 위에서 수많은 인연을 맺고 있다. (사진은 이번 여행기와는 관련 없는 내가 좋아 하는 사진중 하나다)
길은 왜 그렇게 생겼을까? 굽이치다가 이내 내닫고, 고갯길 정상에 다다를 것 같다가도 다시 내뺀다. 갈라지고 만나는 수많은 길 위를 걷는다. 우리가 향하는 목적지가 그 길 끝에 있을 것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우리는 그 길 위에서 수많은 인연을 맺고 있다. (사진은 이번 여행기와는 관련 없는 내가 좋아 하는 사진중 하나다) 김길중

최종 목적지가 같거나 여정 어느 한 구간을 동행하는 것이거나 길을 함께하는 인연은 소중하다. 길의 성격에 따라 (길)벗이라고 하기도 하고 동지라고도 부른다. 긴 여정이라면 더욱 그렇겠지만, 동반자라 하더라도 내내 함께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길 위에서 누군가와는 잠시 헤어짐을 통해 또 다른 동행을 기약하며 갈렸다가 재회하기도 한다.


또 누군가와 잠시간의 틀어짐에서 갈라서지만 결국 만나야 할 지점에서 만나기도 한다. 이 경우 동반자로서 더 깊어진 신뢰를 통해 굳건한 관계로 거듭난다. 약속된 갈라짐이건 의도하지 않았던 갈라섬이었던 가야 할 길이 같았다면 잠시 동안의 다른 경로는 문제 될 게 없다. 길이 있어 나의 갈 바와 벗(동지)이 가는 바가 길을 통해 동반자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 모두가 길이 갈라지고 모아지는 이유이다. 길은 갈라섬을 위한 존재가 아니라 인연을 엮어주는 망이 아닐까?

삶을 통해 만나고 헤어지고 갈라섬이 있던 인연도 있었고 비교적 긴 시간 동안 같은 길에 서 있는 벗도 있다. 나와의 인연에 소원한 느낌의 기억을 가진 벗이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담아 한마디 던져보자면 이렇게 될 것이다.

'그대가 그 길을 걷고 있노라면 언젠가 나와 다시 동행할 여정이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지 않겠나?'

예정보다 빠르게 일정이 진행되었다. 낙동강 하구 을숙도까지 100여 Km 남았다. 일정을 하루 앞당긴 만큼, 점심 먹기 전에 달려 헤어지는 것으로 결정했다.

간밤에 탈수해서 걸어둔 빨래가 뽀송뽀송하게 말랐다. 5시에 일어나 준비하고 서둘러 출발한다. 하남까지는 30여 Km, 아침 먹기에 안성맞춤인 거리다. 우리보다 서둘러 나선 사람들도 여럿 보인다. 아침 안개가 살짝 피어오른 강가의 풍경이 평화롭다.


밀양에서의 돼지국밥.  밀양시 하남읍에서 아침을 먹는다.
밀양에서의 돼지국밥. 밀양시 하남읍에서 아침을 먹는다. 김길중

하남에 도착해 두리번거리는데 마침 국밥집 앞에서 먹고 나오는 두 라이더가 말을 건넨다. '식사하시려고요? 여기 괜찮습니다' 보면 보이나 보다. 이 자리에서 27년을 자리 잡고 있다는 70 남짓의 주인 할머니가 여러 가지를 물어본다.

"서울에서 출발했는지 인천에서 출발했는지, 하남에서 잤는지 남지에서 잤는지..."


많은 자전거 여행객들이 찾는 모양이다. 거리며 길에 대한 정보가 해박하다. 부산까지는 점심 먹기 전 12시 반이면 도착하겠고 "이제 다 달렸네" 한다. 먼저 먹고 나간 일행은 하남에서 자고 부산에 가는데 기차 타고 서울로 올라간단다. 자전거 여행의 즐거움과 내면을 잘 헤아리고 있다. "자전거 여행은 참~ 좋은 것 같다"는 말을 덧붙이신다.

얼마쯤 달려가니 비박을 하면서 여행을 하는지 뒷바퀴 양쪽에 가방(페니어)을 얹고 배낭까지 메고 달리는 사람이 보인다. 작은 언덕 앞에서 쉬는 찰나 앞질러 가더니 낑낑대며 올라간다. 이날만 세 번은 본 것 같다. 을숙도에서도 보았다. 길게 이어지는 길이라면 이렇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따로, 또 같이' 여정을 함께 한다.

JH와도 그랬다. 페이스 차이를 보완하기 위해, 또한 마지막 날이니만큼 속도를 내보고픈 마음에 한참을 달려나가 기다리는 식으로 달린다. 그렇게 달리다 삼랑진 앞두고 엇갈림이 생겼다. 3, 4분은 앞선 것 같아 담배 한 대 피우고 있는데 10분이 지나도 오지 않는다. 중간에 길이 두 갈래로 나뉜 걸 모르고 기다렸던 것이다. JH 보다 뒤에 있던 5, 6명의 무리는 왔는데 JH 만 보이지 않는다. 전화를 했다. "길을 잘못 든 거 아냐? 왜 안 와?", "종주길이라고 표시되어 있고 사람들이 오가는데?" 길이 엇갈린 것이다.

"네 페이스로 가고 이제 부산까지 각자 달리자"고 한다. 자기 때문에 내가 지장을 받는 게 아닌지 하는 뉘앙스다. "내가 뒤에 있을 것 같으니 천천히 달려가면 내가 쫒아 갈게"라며 전화를 끊었다. 10여 Km를 달려 따라잡았다. 생각보다 많이 달려왔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물 한 모금 마신 후 여유를 찾아 다시 '동행'한다.

구포 가는 길 기차와 자전거, 그리고 강이 나란히 달리는 구간이다. 바다에 가까워졌으니 물은 고요하게 흐르고 깊게 나아간다.
구포 가는 길기차와 자전거, 그리고 강이 나란히 달리는 구간이다. 바다에 가까워졌으니 물은 고요하게 흐르고 깊게 나아간다.김길중

부산이 가까워졌는지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의 수와 복장만으로 체감된다. 붐비기 시작하고 복장이 가벼워졌다. 우리처럼 배낭을 멘 사람이 드물어졌다. 미세먼지와 황사로 좋지 않은 날, 부산에 가까워질수록 답답함이 더해진다.

물의 양은 많아졌고 강폭도 넓어진다. 양산 물 박물관 근처 휴게소에서 팥빙수를 먹는 호사도 누려본다. 3일간 달리는데 몰입해 커피 한잔을 마시지 못했다는 JH의 바람을 팥빙수에서 찾았다. 부산이 천천히 눈에 담긴다. 구포를 지나니 강과 자전거와 철길이 나란히 달리던 20여 Km 구간이 끝난다. 마침내 을숙도에 도착, 12시 반이다. 국밥집 할머니께서 말한 시간이다.

사상 터미널에서 수원으로 가는 JH와 부산 터미널까지 지하철을 이동해 가야 하는 나는 밀면 한 그릇 말아먹고 헤어진다. 사우나도 하고 느긋하게 맛있는 것도 먹고 헤어질 요량이었다. 막상 도착해보니 터미널에 조금이라도 일찍 도착해 각자의 목적지로 향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던 수많은 사람들과의 길고 짧았던 만남도 이제 마무리된다. 종점을 향해 마음과 의지를 모아 같이 내달린 두 친구의 헤어짐은 어쩌면 허망하기까지 하다. 장장 580여 Km를 달린 장도를 축하하고 여운을 즐겨야 맞겠지만 서둘러 갈 길을 재촉해야 했으니 그게 다만 아쉬웠다. 그것이 정말 종점이었다면 그렇게 헤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정의 종점은 끝이 아닌 매듭이기 때문이다.

마침내 완성 잠실에서 시작한 580여 Km의 여정이 을숙도 물 박물관에서 일단락 되었다.
마침내 완성잠실에서 시작한 580여 Km의 여정이 을숙도 물 박물관에서 일단락 되었다. 김길중

정거장 25개쯤을 달려 노포역에 도착한다. 애초 5시 10분에 끊어두었던 차편을 많이 앞당겨 3시 20분 차를 탄다. 전주 가는 사람이 많은지 임시로 편성된 관광버스다. 화장실에 들러 세수와 옷만 갈아입고 버스를 기다린다.

"실어 주기는 하겠지만 자전거가 파손되면 책임을 질 수는 없다"는 기사님의 설명이 있다. 1000만 원짜리 자전거를 실었다가 다툼이 있었단다. "과실이 있다면 모를까 고정하지도 않은 채 실어 생긴 흠집에 대한 책임을 기사님에게 물을 수는 없는 것"이라고 거들며 실었다. 그러고 보면 나의 협상력도 솔찬타. ㅎ

연휴 막바지 탓인지 전주를 향하는 도로도 많이 막힌다. 40분 늦게 전주에 도착한 시간은 7시. 차 안에서 잠깐의 졸음도 있었지만 집에 도착하기 까지 그리 큰 피로감은 없었다.
파트너를 잘 만났고 팀을 잘 이뤄 무난하게 일정이 짜인 덕분이다. 간간이 일었던 오버페이스로의 충동을 잘 이겨내고 스스로를 잘 다독인 탓이다. 16살에 만났고 나이 50이 다되어 오랜만에 만난 두 친구의 여정이 모두 끝났다.

출근 후 월요일 '몸은 괜찮더냐'라는 내 물음에 '항문 쪽이 좀 쓰라린 것 빼고는 괜찮다'는 대화로 그 여정이 완전하게 마무리되었다. 다시 어떻게 이어질지 모를 인생사 긴 여행의 한 토막은 이렇게 완성되었다.

10년 후 함께 다시 달려보면서 다시 나와 JH의 기억에 담긴 필름 속 토막을 재생시켜보면 선명하게 담긴 2017년 봄날이 재생될 것이다. 16살, 어떤 기억이 우리를 여기까지 이어지게 한 것처럼, 봄날의 이 기억은 또 다시 무언가를 새겨 두었을 것임을 확신한다.

3박 4일 일정을 함께 하면서 둘이서 찍은 사진 한 장을 남기지 않았다. 깊게 각인된 기억이 그것을 불필요하게 여길 만큼 둘 다 까칠한 사내들이었으므로...

을숙도 물박물관 잠실에서 시작한 580여 Km의 여정이 을숙도 물 박물관에서 일단락 되었다. 둘은 끝내 사진 한장을 남기지 않고 각자의 길로 되돌아 갔다.
을숙도 물박물관잠실에서 시작한 580여 Km의 여정이 을숙도 물 박물관에서 일단락 되었다. 둘은 끝내 사진 한장을 남기지 않고 각자의 길로 되돌아 갔다.김길중

덧붙이는 글 '두 바퀴로 만나는 세상'이라는 제목으로 자전거 여행기를 담아보려 합니다. 이 기사는 인터넷 매체인 '전북 포스트'에 동시에 보냈습니다.
#두 바퀴로 만나는 세상 #낙동강 종주 #자전거 여행 #길벗 자전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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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타는 한의사, 자전거 도시가 만들어지기를 꿈꾸는 중년 남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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