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방송독립 연대파업 출정식’이 파업중인 언론노조 MBC본부와 KBS본부 조합원들을 비롯한 언론노조 조합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권우성
이번 파업은 그래서 다르다. '공정 언론', '언론 적폐 청산', '방송 독립'과 같은 구호들은 여전해도, 파업을 지지하고 응원하며 참여하는 이유는 다르다. 정규직 PD와 기자가 아니어도, 공영방송이 직장이 아니어도, 자신이 원했던 일은 이것이 아니었다는 권력과 자본에 대한 거부가 터져 나오는 중이다. 뉴스 화면의 자막을 치고 교정하는 일, 섭외부터 심부름까지 온갖 잔심부름을 떠맡아야 하는 일, 납품마감일을 앞두고 '갑질'을 감내해야 하는 일. 업무의 종류를 떠나 더 이상 이렇게 일하고는 싶지 않다는 거부의 몸짓과 목소리가 이번 파업의 동력이다.
파업을 지지하는 시민들은 또 어떠한가. 지난 9년 동안의 언론에 대한 분노는 정치적 중립이나 객관성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연간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의 수"와 같이 단지 숫자로만 보였던 세월호 희생자들의 분노처럼, 시민들은 방송사라는 '공장'에 갇힌 언론인들에게 자신을 '사람'으로 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파업의 지지는 언론 노동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나를 위한" 지지이다.
결국 이번 파업은 KBS와 MBC의 파업, 언론노조 KBS, MBC본부 조합원들만의 파업이 될 수 없다. 설령 사장과 이사장이 사퇴해도 그것이 기자와 PD라는 직업 정체성의 회복만을 위한 것이라면, 공정 보도와 정치적 중립이라는 추상적 목표의 달성만을 위한 것이라면, 어떤 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YTN의 한 해직 기자는 복직을 앞두고 축하한다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복직이 되었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해고는 원인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할 수 없는, 하면 안 되는 일을 강요하고 억압한 그 직장이 바로 원인입니다. 해고를 당하면서도 바꾸려 했던 그 곳이 그대로라면 복직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고대영과 김장겸의 퇴진, 공영방송의 정상화, 공정 언론, 정치적 독립. 그 어떤 구호와 목표라도 기자가 말한 '복직'과 같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파업의 구호와 요구는 기자와 PD라는, 공영방송이라는 정체성의 회복에만 그칠 수 없다. 비정규직들까지 나서 제작을 거부하는 방송, 언론 노동자가 아니라 바로 '내가 고통받았던' 방송은 권력과 자본이 강요하고 억압한 모든 노동과 인권을 위한 투쟁을 통해 달라져야 한다.
유경근 집행위원장의 말이 다시 비수처럼 가슴에 꽂힌다. "망가진 언론의 피해자는 언론 노동자가 아니라 바로 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KBS·MBC의 파업은 방송사 두 곳이 아니라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꾸기 위한 투쟁이 되어야 한다. 훌륭한 기자와 PD라는 직업을 되찾기 위한 파업이 아니다. 이 파업은 언론 노동자들이 누군가에게 자랑스러운 부모가, 자식이, 이웃이, 동지가 되기 위한 투쟁이다. 오래전 멕시코 라깡도나 밀림의 사파티스타들이 그랬듯 이번 파업은 '물어가며 함께 걸어가는'(preguntado caminamos)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투쟁이 되어야 한다. 이 글은 앞으로 이어질 연속 기고의 첫 글이자, 그런 물음과 걸음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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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언론노동조합(全國言論勞動組合, National Union of Mediaworkers)은 대한민국에서 신문, 방송, 출판, 인쇄 등의 매체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가입한 노동조합이다. 1988년 11월 창립된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언론노련)를 계승해 2000년 창립되었다.
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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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진 언론의 피해자는 누구?" KBS·MBC노조만의 파업이 아닌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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