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까요? 게들이 지은 집의 모습입니다. 인간이 한 번에 밟아 뭉갤 수도 있는 그들의 집.
김학현
어제의 그림이 아닌 또 다른 그림 앞에서 한참을 멈춰 섰습니다. 멍하니 먼 수평선을 바라봅니다. 저 수면 아래 어디쯤 삶의 지난한 울부짖음이 남아 있겠지요. 그러다 다시 이곳에 와 또 다른 영역의 흔적을 남기겠지요. 나는 날마다 노을길을 걸으며 철학자가 되어가나 봅니다.
이러다 철학박사 학위 하나 받으려나 봅니다. 존재감만 흔적으로 남기고, 존재는 보여주지 않는 조그만 바다 동물들이 나에게 삶이란 그리 지난한 것이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어느 화가가 이리 멋진 그림을 그릴까요.
물결이 그린 모래 그림, 게가 그린 생활미술, 물길이 만든 너와 나의 경계, 모두가 환상입니다. 내 다리가 멈춥니다. 내 발이 멈춥니다. 내 생각도 머뭅니다. 나의 지체 하나가 멈추니 모든 지체가 멈추는군요. 그리고 덩달아 머리는 수도 없이 많은 정보를 비축하기 위해 눈과 협치를 합니다.
그리도 못하는 정치인들의 협치는 제 눈과 머리가 해내는군요. 멈춘 곳은 서덜길과 모랫길이 만나는 그 지점, 바로 여깁니다. 어떻게 같은 바닷길이 이리 다른지요? 여기가 거기잖아요. 안면도 삼봉해변 바닷길, 물이 들어오면 바닷길이 되고 물이 빠지면 내가 걷는 길이 되는, 그 바닷길 말입니다.
그런데 보고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다릅니다. 서덜길과 모랫길의 형태가. 모습도 다르지만 색깔도 다릅니다. 촉감도 다르고 사는 생물의 종류도 다릅니다. 하나는 굴이 붙어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엄청나게 작은 게들이 엄청나게 많은 집들을 지었나 봅니다. 파낸 건축자제들이 즐비합니다.
모두가 예술입니다. 모두가 삶의 흔적입니다. 이리도 아름다운 삶의 현장에 취하는 게 나의 아침 운동입니다. 나의 노을길 걷기입니다. 이러면서도 행복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냉혈한이겠지요. 이런 행복은 아무나의 것은 아닙니다. 안면도에 사는 나 같은 사람의 것이지요.
누가 그랬나요. 운동은 건강하려고 한다고. 맞습니다. 나의 댓바람 운동은 건강을 위한 것입니다. 몸의 건강, 마음의 건강, 영의 건강... 너무 나갔나요? 나의 걸음은 발과 다리로만 하지는 않습니다. 나의 걸음은 머리로도 합니다. 가슴으로도 합니다.
게의 집이 때로 내 집입니다. 물길이 파놓은 웅덩이가 때론 내 목욕탕입니다. 마음과 심령을 깨끗이 씻는 목욕탕 말입니다. 서덜길이 덜컹거리는 내 인생길이 되기도 하고, 숲길이 내 잔잔한 인생을 비추기도 합니다. 행복에 겨워 피톤치드를 맘껏 뿜어내는 인생이길 고대하면서, 걷습니다.
또 걷습니다. 오늘도. 내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