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1491호 연잉군 초상. 해설: 연잉군은 당시 21살의 청년 왕자였다. 1714년 박동보 寫. 소장처: 국립고궁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 미복 잠행을 즐겼던 영조효성이 지극했던 그는 민생에도 관심이 커서 부왕인 숙종이 그랬던 것처럼 미복 차림의 잠행을 즐겼다고 한다.
연잉군 시절 사저에서 생활한 경험도 있고, 궁녀의 아들인지라 같은 처지(?)로 동질감을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민국 정치(民國 政治: 일반 백성을 위한 정치)를 국정운영의 방점으로 찍었기에 백성의 질고에 있어서도 무척 신경을 썼을 것이다.
나뭇꾼의 일화 역시 이와 관련된 야사로 계압만록에 수록되어 있다.
이와 같이 최고 권력자의 궁궐 밖으로의 미행은 비단 조선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청나라 황제인 건륭제 역시 미복 잠행을 무척 즐겼던 걸로 유명하다.
1752년 섣달 그믐날 미복 잠행에 나섰던 건륭제는 궁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금성 근처 식당가를 찾았다고 한다. 그러나 늦은 밤이라 딱 한 곳만 영업을 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맛있게 야참을 즐긴 건륭제는 밤중에 문을 연 까닭을 주인에게 물었다.
주인이 말하길 "황제께서 국사를 돌보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는데, 혹시 자금성을 찾는 백성들이 허기를 채우지 못한다면 이것 역시 황제의 어진 정사를 위한 장사치의 도리가 아니다."라며 대답했다고 한다.
기분이 좋아진 건륭제는 주인에게 상점의 이름이 무엇인지 하문했는데 주인은 아직 상호을 짓지 못했다고 한다. 아무말 없이 건륭제는 궁으로 돌아갔고, 며칠후 사람을 보내 도일처(都一處: 두이추)라는 상호의 편액을 하사했다.
물론 황성에서 제일가는 식당으로 부상했음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오늘날까지 성업하고 있는 곳인데 아직도 베이징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18세기 동 시대를 살았던 조선왕과 청국황제가 미복 잠행을 즐겼다는 점은 참으로 특이하다. 또 미행 중 일반 백성들을 향해 더없이 은사(恩賜)를 배풀었다는 것 역시 흥미롭기만 하다.
(지난편 보기: [역사카툰] 8화 '원혼 해결사' 여동식, 암행어사 출두요! )[제공: 카툰공작소 케이비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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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카툰] '엄마 사랑' 영조를 웃게 한 나무꾼의 무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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