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 표준근로계약서고용노동부가 고용허가제 입국 이주노동자에게 제공한 표준근로계약서는 근무시간 등 최저임금을 엉터리로 작성하고 있다.
고기복
고용허가제는 이명박 정부 이후 철저하게 고용주 편의 위주로 바뀌면서 제도 도입 취지가 퇴색해갔다. 이주노동자 사업장 변경은 위헌 결정을 받았던 산업연수제보다 어려워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독소 조항이다. 그래서 지금의 고용허가제는 과거 산업연수제보다 못하다고 말할 정도가 되었다.
위헌 결정을 받은 산업연수제보다 낫게 운영해야 하는 건 국가의 책무다. 이전보다 더 나빠진 부분은 고용노동부가 제공하는 표준근로계약서만 살펴봐도 쉽고 간단하게 알 수 있다. 이게 과연 노동업무를 담당하는 공공기관에서 한 게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예를 들면 이렇다.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N은 2016년도에 이천에 있는 버섯농장에서 일하기로 하고 입국했다. 그는 입국하면서 고용노동부를 통해 사업주와 근로계약을 이렇게 맺었다.
▲ 하루 10시간 근무 ▲ 월 2회 휴무 ▲ 월 226시간 근무 ▲ 월급 122만6270원
위 근로계약서가 엉터리인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근무시간이 하루 10시간이고, 월 2회 휴무면 월 280~290시간이다. 그런데 226시간이라고 쓰고 있다. 더 나아가 2016년도 최저임금에 따르면, 월 209시간 근무 노동자 급여는 월 122만6270원, 월 226시간 근무 노동자는 월 136만2780원이다. 월 근무시간을 226시간이라고 했으면 최소한 월 136만2780원이라고 써야 하는데, 이마저도 틀렸다.
이처럼 엉터리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다 보니, 이주노동자들은 과도한 노동시간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월급을 받아야 한다. 주휴수당이니 뭐니 하는 건 언감생심이다. 고용노동부 핑계는 이렇다. 근로기준법 제63조에 따른 농·축·잠·수산업의 경우 같은 법에 따른 근로시간, 휴게, 휴일에 관한 규정은 적용받지 않기 때문에 그래도 된다고 말이다.
하지만 고용노동부 주장에는 맹점이 있다.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해당 법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최저임금법 제5조 1항은 "이 법은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이하 "사업"이라 한다)에 적용한다"고 돼 있다. 말인즉, 월 226시간 이상 일했으면, 그 이상을 지급해야 한다는 뜻이다.
만약 고용노동부가 제공한 표준근로계약서처럼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면 이주노동자들은 1일 24시간 일 시키고도 8시간 임금만 줘도 된다는 주장이 성립된다. 고용노동부가 월 290시간을 일을 시키고, 월 226시간으로 쓰도록 유도하는 건 이주노동자들을 공짜로 부려먹으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고용노동부는 이명박 정부 이후, 이러한 잘못된 관행을 고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휴일과 휴게시간이 사실상 없고, 국경일도 없고, 야간도 없고, 잠도 못 자고, 최저임금조차 안 줘도 된다는 이야기를 고용노동부가 하고 있는 셈이다.
N은 올해 들어 월평균 290시간 이상 일했다. 주휴와 월차 수당을 빼도 185만 원 이상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월급은 137만 원 고정급이었다. 올해 월 226시간(주 44시간) 근무업체는 최소 146만2220원을 지급해야 한다. 고용노동부는 이런 현실인데도 근로감독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고용허가제 자체가 갖고 있는 독소조항과 산업연수제 형식과 내용을 답습하려는 기업과 정부의 운영 방식 때문에라도 고용허가제 폐지 요구는 더 거세질 것이다. 그런 마당에 산업연수제 자체를 부활시키려는 주장은 그야말로 적폐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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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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