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량동 1148에 세워져 있는 정발 장군 동상
정만진
4월 13일 전쟁이 시작되었다1592년 4월 13일 오후 6시경 부산 앞바다를 가득 메웠던 일본 침략군은 14일 아침 짙은 안개로 가득찬 해안으로 밀려온다. 1만 8000명이나 되는 적군은 금세 부산진성을 에워쌌다.
백성들까지 모두 합해도 1000명에 지나지 않았던 아군으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아직 마흔밖에 안 된 부산진 첨사 정발은 끝까지 분투했지만 마침내 전사했고, 곁에서 돕던 첩 애향은 스스로 목을 찔러 죽음의 길을 갔다.
정발 곁에서 충실한 참모 역할을 했던 이름 높은 선비 이정헌도 칼을 휘두르던 끝에 순절했고, 정발의 종 용월도 주인의 장렬한 죽음을 보고 분개하여 단신으로 적진에 뛰어들었다가 전사했다.
아들의 순절 소식을 들은 정발의 노모는 울음 끝에 절명했다. 일본군은 부산진 안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학살했다. 군신(軍神)에게 제사를 지낸다면서 개와 고양이까지 다 죽였다.
개와 고양이까지 모두 죽이는 일본군후대인들은 부산 동구 좌천동 473에 정공단(鄭公壇)을 차렸다. 단은 묘소 없이 제사를 지내는 시설을 말한다. 후대인들은 1766년(영조 42)에 조성한 이 제단에 정발만이 아니라 이정헌, 애향, 용월은 물론 이름 없이 숨져 간 선열들을 모두 모셨다. 정공단 경내에는 1761년(영조 37)에 세워진 '충장공 정발 전망(戰亡, 전쟁에서 죽음)비'도 있다.
부산진성을 무너뜨린 왜적은 다음날인 4월 15일 동래성으로 몰려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