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최대의 보물선이라 일컫는 ‘신안선’ 발굴 40주년을 맞아 특별전이 열린다.
이영주
1960년대 전남 신안군 증도면 검산마을 어부들의 그물에 푸른색을 띈 깨진 도자기 일부와 나무 조각 등이 걸려 올라왔다. 생선이 걸리기를 기다리던 어부들은 이를 무심코 다시 바다에 버렸다. 그러던 중 1975년 8월 한 어부의 그물에 외형이 잘 보존된 도자기 6점이 걸려 올라왔다. 역사상 최대의 보물선이라 일컫는 '신안선'이 7백년 만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이후 정부는 1976년 10월과 11월에 2차례의 예비발굴조사, 1977년부터 1984년까지 9년간 11차례에 걸쳐 발굴조사에 들어갔다. 세계 수중 발굴 역사상 유례가 없는 해군의 협조도 이어졌다. 증도 검산마을 어부의 발견은 우리나라 수중고고학의 시발점이었다.
조사가 시작된 후 수심 약 20m에서 베일에 감춰진 신안선의 존재가 드러났다. 260t급 규모의 목제 범선으로 길이는 34m에 달했다. 1323년 여름 중국의 저장성 칭위엔(현재 보닝시)에서 출항하여 일본의 교토를 목적지로 항해 중 거센 풍랑을 만나 침몰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신안선은 7백년이라는 시간동안 바닷속 갯벌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배 내부는 온갖 귀한 무역품들로 가득 차 있었다. 당시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중국 도자기와 금속공예품, 석제품, 향신료 한약재 등 모두 2만6천여 점이 실려 있었다. 화물칸 아래쪽에는 동남아시아 고급향나무 1천여 점, 중국동전 8백만 개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야말로 역사상 최대의 보물선이었다. 신안선 발굴 소식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언론에서도 '세기의 발견'으로 보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