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4대강 살리기라면 명목으로 금강의 뼈와 살을 발라내던 날에도 금강을 지켰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공산성에서 바라본 금강 둔치.
김종술
'이명박근혜 4대강'에 맞선 나는 지난 9년을 몸으로 때웠다. 4대강 공사 때는 얻어터지고, 준공 후엔 내 몸을 생체도구로까지 이용했다. 죽은 물고기를 부여안고 울었다. 툭하면 녹색으로 물든 강물에 몸도 던졌다. 큰빗이끼벌레를 먹고 녹조를 마시면서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배탈이 나고 피부병에 걸렸다. 두통약 없이는 하루를 버티기도 힘든 지경으로 치달았다.
촌구석 이름 없는 지역신문 기자로서 정부와의 맞짱은 처음부터 승산 없는 싸움이었다. '수적 천석(水滴 穿石)'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는 속담은 속담일 뿐이었다. 긴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4대강을 취재하면서 빚쟁이로 몰리고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였다.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 몸부림쳤다.
공사인부와 공무원들과 부딪치면서 욕먹고 얻어터지는 것은 오히려 견딜만했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손을 벌리는 것도 두세 번이다. 오랜만에 보는 가족들도 혹시나 돈 부탁 할까 봐 "왜 무슨 일인데?"라며 눈부터 커진다. 수없이 가져다 썼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그럴 때마다 난 참담했지만, 미친 듯이 4대강 취재만 했다.
한 가닥 희망이 보일 때도 있었다. 굳게 닫혔던 4대강 수문이 열리는 꿈을 꿀 때였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부터 환상이 심해졌다. 곧 수문이 열릴 것이라는 착각 속에 살았다. 콘크리트 댐이 무너지는 상상은 수없이 했다. 몽유병 환자처럼 비만 오면 잠들지 못하고 캄캄한 밤에 4대강 댐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다 착각이었다. 4대강 사업에 앞장섰던 부역자는 살아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4대강 수문개방'을 지시했을 때 나에게 전화를 걸어서 '앞으로 잘 지내보자'던 정부 부처 인사의 전화도 거짓이었다. 4대강 수문개방은 달콤한 속삭임이었다. 여전히 권력을 행사하는 부역자들의 반발로 '찔끔 개방'에 그쳤다. 추가개방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버티기엔 너무 지쳤다.
[금강이] 절망에 날개를 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