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셔먹는 라면
고동완
무심코 전이된 라면나에게 라면은 무의식으로 전이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만4살 때면 1997년이다. 대전 친척 집에 살 때였다. 친척 누나는 어느 날, 라면을 끓였고 라면은 나의 식습관을 뒤바꿀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당시만 해도 난 뭘 먹든지 간에 꾹 물기만 하고 잘 삼키려 하질 않았다. 밥을 먹더라도 구강에 힘을 줘 단물만 쏙 먹고 끈끈해진 밥 덩어리는 삼키길 주저했다. 라면은 이 버릇을 단숨에 고쳤다.
코끝을 자극하는 후각의 강렬함, 침이 뚝뚝 나오게 만드는 빨간 국물, 이것에 차지게 얹어놓은 면발까지. 4살이었지만 젓가락을 옮기지 않고선 못 배길 광경이었다. 면발을 입안에 집어넣자 식도로 넘어가려는 걸 쳐내려는 행동은 벌이지 않았다. 국물을 들이킬 때는 강렬한 게 목을 타고 넘어오는 걸 느낀 것 같으면서도 이내 입안과 입 주변에 생긴 얼얼함을 즐겼던 것 같다.
이리하여 라면과의 첫 만남은 내 의지의 소산이 아니라 친척 집에 파고든 라면의 보편성과 굳건했던 식습관을 허물어버린 라면 특유의 강렬함이 성사시켰다. 이후에도 '첫 만남'은 계속됐다. 면과 스프, 건더기로 라면의 구성품은 줄곧 동일한데 이걸 가지고 만들어낸 결과물은 흐르는 인생과 함께, 난생처음 보는 것들로 내내 변주됐던 것이다.
라면과의 첫 만남에서 가장 크게 충격파가 일어난 건 라면의 '과자화'였다. 2001년 만8살, 초등학생이었을 때다. 문구점에서 친구가 나오는데 손에 라면 봉지가 쥐어져 있었다. 봉지의 형태는 반듯하지 않고 쭈글쭈글했다. 궁금해서 봉지를 열어보니 으깨진 면에 수프가 덕지덕지 묻어있었다. 이게 뭔가 싶어 부서진 면을 집어 먹었다.
자주 찾는 '부숴 먹기'맛은 맵고 단조로운데 중독성이 은근 있었다. 건조된 면이 씹는 질감을 과자로 만들었고 거기에 수프가 더해져 독창적(?)인 맛이 만들어졌다. 그 맛을 생각하니 다시 군침이 도는데, 이 친구는 라면을 끓이는 전통적인 조리법을 따르지 않고 부순 면에 수프를 버무려 과자로 만들었다. 가스도, 물도 필요가 없는 진정으로 간편한 조리였다.
사실 부숴 먹는 라면의 시초는 99년 출시된 '뿌셔뿌셔'였다. 만7살일 때 떡볶이 맛, 불고기 맛, 바비큐 맛을 섭렵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나 메론 맛, 딸기 맛은 먹을 게 못 됐다. 다만 당시에는 라면이 아니라 뿌셔뿌셔 말마따나 과자로 출시된 걸 먹었기 때문에 끓여서 조리하는 라면을 부숴 먹는다는 발상은 미처 하질 못했다. 그러한 인식의 저변을 넓혀준 게 아까의 사건이다.
여하튼 너무나도 간편한 새 조리술이 각인된 이상 어찌 마다하겠는가. 라면 봉지에 적힌 조리법을 가뿐히 무시하고 어린 나이에 잘만 부숴 먹었다. 끓여 먹으면 으레 필요한 그릇과 숟가락의 준비는 필요하지 않았다. 조리랍시고 면을 부술 힘과 그 힘을 전할 몸이 있으면 됐다. 때론 귀찮음이 더해져 지금도 잘만 부숴 먹는다. 그럼에도 사소한 거지만 부수는데 주의할 게 있다.
면을 부수려고 봉지에 손을 얹고 힘을 가할 때 전방위여선 안 된다. 우선 라면 양쪽에 손을 대고 힘을 줘 두 동강을 낸 다음, 다시 4등분, 8등분 하는 식으로 부숴 나가야 한다. 무작정 손에 힘을 팍 싣고 전방위로 부숴나갔다간 라면 봉지가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터져버린다. 그러면 수프를 집어넣고 봉지를 흔들 때 터진 곳에서 온갖 것들이 뿜어져 나오는 참사를 겪는다.
라면, 어떻게 먹게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