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장을 받은 아내와 함께훈장증에는 대통령 문재인, 국무총리 이낙연, 행정안전부장관 김부겸의 이름과 직인이 새겨져 있었다.
이정희
하여간 우리 집 거실 책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갖가지 패들 가운데 요즘 들어 훈장도 하나 자리하게 됐다. 내가 받은 훈장이 아니라 아내가 받은 홍조근정훈장이다. 40년 근속을 하고 정년퇴직한 교육공무원들에게 주는 훈장이란다. 만40년을 채운 이들에게는 황조근정훈장을 준다는데, 아내는 만40년에 4개월이 부족해서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내는 지난해 8월 31일 정년퇴직했다. 39년 8개월, 햇수로 40년 동안의 교원 생활을 평교사로 마무리했다. 당시에는 훈장은 바라지도 않았다. 전교조 교사인 데다가 '교사 시국선언'에 이름을 올렸기 때문에 훈장 대상자가 아니라는 말도 들었다. 훈장이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이라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동하기도 했지만, 일찌감치 포기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 후 광화문 광장의 촛불이 세상을 바꾸어놓았다. '촛불혁명'이 대한민국의 진로를 새롭게 열었다. 조기 대선이 실시됐고, 새 정부가 출범했다. 무엇보다도 정의와 인권, 민주주의가 새로운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거대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 아내에게도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해 받지 못했던 훈장을 올해 받을 수 있게 됐다는 소식이었다. 아내는 기뻐했다. 포기했던 훈장을 받게 되었으니 기쁨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진짜 큰 기쁨은 따로 있었다. 훈장을 주는 이의 이름이 문재인이라는 것에서 오는 기쁨이었다.
아내는 지난해 훈장을 받지 못한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말을 했다. 별문제가 없어 지난해 훈장을 받았더라면 '훈장증'에 가장 혐오스러운 이름이 새겨졌을 테니, 그것을 평생 간직하며 살아야 하는 것도 고역일 거라는 얘기였다.
아내가 지난해 정년 퇴임 해에 훈장을 받지 못하고 올해 받게 된 것이 나로서도 여간 다행이 아니었다. 일찍이 아내로 하여금 전교조에 참여케 했고, 지난해 초의 교사 시국선언에도 이름을 올리도록 유도했으니, 더구나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에 내 이름이 오른 처지이고 보니, 아내가 포기했던 훈장을 받게 된 것은 내게도 큰 위로가 됐다.
지난해 훈장 대상에서 제외됐던 시국선언 관련 교사들이 올해 훈장을 받게 된 데에는 김지철 충청남도교육감의 역할이 컸다는 얘기도 들렸다. 김지철 교육감이 전국시도교육감회의에서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했고, 정부에 대한 건의 절차를 밟게 됐다는 얘기였다. 그 문제를 충남교육감이 맨 먼저 제기하여 좋은 결과로 나타났으니, 충남도 교육공무원이었던 아내로서는 자부심을 가질만한 일이었다.
'촛불'이 가져다준 훈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