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봉암 선생 58주기 추모제. 2017년 7월 31일 서울 망우리묘역. (사진제공 새얼문화재단)
김갑봉
추 대표가 말한 대로, 대한민국은 지금 지대 추구의 덫에 걸렸다. 임대소득과 자본이득을 합친 부동산 소득만 해도 매년 400조 원 이상(GDP의 30% 이상) 발생하며, 그 소득의 상당 부분을 소수의 부동산 부자들과 토지 투기에 몰두한 재벌·대기업이 차지한다. 기업은 생산적 투자로 이윤을 얻기보다 투기로 토지 불로소득을 얻는 일에 더 관심을 쏟고, 직장인은 월급을 알뜰하게 저축해서 노후를 대비하기보다 대출금으로 부동산을 사서 값이 오르기만을 기다린다.
반면, 경제 활력이 떨어져서 일자리가 새로 생기지 않으니 청년들은 안정적인 직장에 취업하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한다. 직장을 그만두고 퇴직금을 받아서 자영업에 뛰어드는 사람들은 과당 경쟁과 높은 임대료 때문에 가게를 연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가진 돈 다 날리고 사업을 접는다. 어떤 사람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제대로 먹고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은 아무리 빈둥빈둥 놀아도 날이 갈수록 재산이 늘어나는 부조리한 세상, 그것이 바로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토지소유와 각종 특권에서 기인하는 불로소득, 즉 지대를 차단하지 않으면 이런 부조리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단지 최저임금 좀 올려주고 복지 지출 늘리는 정도로는 턱도 없다. 지대 추구의 특권을 그대로 두고는 소득주도 성장도 불가능하다고 한 추 대표의 말은 정곡을 찌른 것이다.
추 대표가 헨리 조지의 이론과 조봉암의 개혁과 자신의 구상을 연결시키는 것도 무척 인상적이다. 헨리 조지의 토지가치세 사상, 조봉암의 농지 유상몰수-유상분배, 자신의 지대개혁이 모두 동일한 정신에 입각하고 있음을 이해하니 말이다.
이 셋을 관통하는 정신은, 천부자원으로 거저 주어진 토지와 자연에 대해서는 모든 사회 구성원이 똑같은 권리를 누리게 하자는 평등지권 사상이다. 평등지권이 모든 사람에게 보장되어야만, 자본주의는 땀 흘려 일하고 노력하는 사람이 잘 사는, 정의롭고 활력 넘치는 사회가 될 수 있다. 국공유지 비율이 높고 그것을 잘 관리해 온 싱가포르와 핀란드가 이를 증명하며, 2차 세계대전 이후 농지개혁을 수행하여 상당 기간 고도성장을 구가한 대만과 일본과 한국도 대표적인 사례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법이 보유세 강화를 중심으로 한 세제개혁에 있다는 점도 잘 알고 있으니 기대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다. 다만, 그 개혁의 세부 내용을 밝히지는 않았고, 또 개혁 과정의 어려움에 대한 깊은 고민의 흔적도 드러내지 않아서 약간 우려되기는 한다. 하지만 그건 지금부터 고민하고 연구해서 채워나가도 된다. 모든 개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철학과 방향이니 말이다. 부디 추 대표는 귀한 연설을 통해 천명한 입장을 쉽게 포기하지 말고, 더 깊이 천착해서 조봉암과 노무현에 못지않은 걸출한 정치가로 이름을 남기기 바란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17
경실련 토지주택위원장, 토지정의시민연대 정책위원장, 토지+자유연구소 소장, 지식인선언네트워크 운영위원장, 대구가톨릭대 교수 등을 역임했고, 현재는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를 맡고 있습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