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기획자, 장혜영 씨
김광섭
"언니랑 나와서 살래?" 동생과 함께 살아야겠다는 처음 생각했을 때는 막연했다. 하지만 더는 동생을 시설에 있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이 섰다. 그가 겪은 시설은 장애인들에게 '조용히, 얌전히, 가만히. 시설 규칙 따르기'만을 요구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를 통제와 순육이라고 표현했다. 발달장애인을 돌보는 사회복지사가 충분하지 않은 이유도 있었다.
'제대로 교육받은 충분한 수의 사회복지사들이 있는 시설은 현재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최근까지 동생은 한 방에서 다른 15명의 성인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단 두 명의 사회복지사들의 돌봄 속에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어른이 되면' 프로젝트 소개 중동생이 입은 속옷이 다른 장애인의 것인 적도 있었다.
"'시설이 전부가 아니고 더 넓은 세상,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내가 한 번도 만나지 않았지만 만나는 그 순간, 내 것이라고 느껴지는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을 동생도 누릴 권리가 있다고 느꼈죠."부모님, 친구, 선후배, 동료들이 그의 결정을 만류했다.
"동생과 저의 인생은 별개이고, 제가 살고 싶은 삶을 동생으로 인해 살지 못하는 것이 불합리하다고들 했죠." 18년간 시설에서만 산 동생이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부모님은 동생이 18년을 같은 공간에서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살아왔는데, 단지 제가 원하는 이유로 사회에 나오는 건 동생이 힘들어하고 적응하지 못할 수 있다고 걱정하셨어요. 저도 그 걱정이 컸고요. 막내가 원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많이 걱정했는데, 그 부분에 있어서 마음을 달리 먹었어요. 장애인의 행복을 보편적인 행복의 기준선에 놓지 않고 마치 따로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동생이 사회에서 적응할 수 있게 시설에서 나오기에 앞서 조금씩 세상을 체험했다.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동생과 함께 시설 밖에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재미난 사람도 만나고 여행도 했다.
"처음에는 이사를 간다는 것을 생각 못 했어요. 어느 순간에는 다른 시설로 가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답했죠) 언니가 하고 집에서 사는 거야."1년의 준비 시간이 필요했다. 부모님과 동생을 설득하고, 동생과 함께하기 위한 주변의 삶을 정리했다. 동생과 6개월 동안 함께 있기 위한 생활비도 모았다. 동생이 서울시 주간보호시설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서울 거주 6개월 이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장혜영 씨의 24시간은 동생과 함께 흘러간다.
'어른이 되면' 프로젝트그는 어렸을 때, 장애인 가족을 둔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았다.
"8~7살 때 찾을 수 있는 이야기는 헬렌 켈러였어요. '우리와 같은 사람은 없는 건가' 생각했죠."너무 멀게만 느껴지는 역사 속 이야기였다.
"시설 밖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물론 저도 확신은 없어요. 강력한 설득의 언어를 구사하는 게 아니라 '살아 보니까 이런 길도 있더라고요' 느낌을 주고 싶어요."장애인과 그 가족만이 아닌 모두가 장애인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기를 원했다.
"얼마나 많은 장애인이 격리되어 살고 있는지, 충격을 조금 드리고 싶었어요. 우리가 같이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아무도 모르는 현실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었죠."동생이 자립하는 과정을 영상으로 기록하는 것이 '어른이 되면' 프로젝트다.
"비슷한 경험을 하고 싶은데 여건이 안 되는 분, 용기를 낼 수 없어서 못 하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그분들에게 우리 이야기가 전해진다면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다큐멘터리 제작 후원을 받기로 했다. 목표 금액은 5천만 원. 8월 15까지 1,249명이 후원해 약 5천 4백만 원이 모였다.
"없는데 아껴서 참여해 주신 분, 저와 비슷한 분들이 많았어요. 자신의 생존을 떼어서 저희에게 주신 거라 생각하거든요. 저희가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자신들도 잘 사는 세상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아시는 분들이 도와주신 거로 생각해요. 그 마음을 절대 잊지 않고 자부심 가질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