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중인 겨울이임순례 감독 제공
녹색전환연구소
- 감독님처럼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인구가 점점 늘고 있다. 감독님에게 반려동물과 사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다."조건 없는 위로를 받는 것 같다. 동물들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행복해지고 미소가 지어진다. 이런 게 사람과의 사이에서는 어렵다. 말다툼을 하기도 하고 가치관이 안 맞아서 섭섭하기도 하고. 동물이 나를 볼 때 조건 없이 사랑으로 볼 것 같고, 나 또한 동물을 볼 때 무조건적인 사랑과 신뢰가 가능하다. 이런 존재는 삶에 굉장한 도움이 된다.
불교적 세계관으로 보면 동물이나 여타 다른 존재가 나와 나눠져 있는 게 아니다. 동물이 나일 수 있고 내가 동물일 수도 있다. 불교의 윤회 관점에서 보면 이 동물이 전생에 나의 어머니였을 수도 있고 내가 동물의 몸을 빌어서 다시 태어날 수도 있는 거다.
불교에서는 동물을 차별함이 없고 인간 중심적인 우월사상도 없다. 이런 사고가 동물보호운동과도 연결되는 것 같다. 오래된 천주교 집안에서 자란 내가 불교신자가 된 것도 이런 가치관들이 나와 잘 맞았기 때문이다."
결혼 대신 '비혼',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가족형태도 변화해야- 천주교 가풍 속에서 유일한 불교도가 된 건 일종의 비주류를 선택한 셈이다. 감독님의 과거를 돌아보면 고등학교 때 자퇴한 것이나 기존 체제와 달리 다른 길을 갔던 내력이 있다. 이 중에는 잘 나가는 영화 감독에서 동물보호 운동가로 활동하는 것도 포함되고 일상의 영역에서 보자면 비혼으로 사는 것도 그중 하나다. 비혼이라는 단어도 없던 시절,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독립적으로 살아가기 어려운 시절을 살아온 비혼 선배로서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만약 비혼을 생각하는 여성이 백만 명 있다면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백만 가지 사정이 있을 거다. 짧게 몇 마디 한다고 해서 그 안에 내 생각이 잘 담길지 모르겠지만 내가 왜 비혼을 선택했는지는 간단히 말할 수 있다. 집안 어른들 말씀을 들어보면 아주 어릴 때부터 나는 결혼을 안 할 거라고 얘기했다 한다. 어쩌면 전생부터 결혼의 풍습이 없었던 게 아닐까(웃음). 그 후로도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평온하지 못했던 부모님의 결혼 생활이 가장 큰 원인이 된 것 같다.
성인이 된 후로도 결혼을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건 비관적인 개인 성향도 한몫했다. 당시에는(80년대) 결혼하면 아이를 낳는 게 일반적이었다. 예전부터 세상에 내가 태어난 것이 좋지 않았고 누군가에게 나의 몸을 빌어서 이 세상에 살아가라고 하는 것도 폭력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당연히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것에 부정적이었다.
직업적으로 영화 일을 하면서부터는 집을 많이 비우고 불안정한 삶을 살게 되어 결혼에 적합하지가 않았다. 그리고 사람을 통해서 외로움이나 결핍을 해소하고 싶지 않았다. 해소할 수도 없다고 생각했고. 운도 좋았다. 내가 원한다고 해서 다 그렇게 살 수 있는 건 아닌데 결국 내가 바라던 대로 살 수 있었던 걸 보면.
비혼이 나한테는 잘 맞았지만 단순히 내 경우만 갖고 결혼보다 비혼이 더 좋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어떤 사람은 그 결혼을 통해 행복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출산, 육아를 통해 다른 세상을 경험할 수도 있고. 너무 한가지 측면에서만 바라보지 않으면 좋겠다. 자기 상황과 기질, 가치관 이런 것들을 잘 고려해서 결정해야지 유행이나 트렌드처럼 좇아가지 않길 바란다.
대신 지금의 결혼제도가 절대적으로 여성에게 불리하다는 현실을 깨닫고 제도적으로 보완하지 않는 한 전통적인 결혼은 감소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대안가족이나 동성커플이 늘어나는 것처럼 가족의 형태도 계속 변해야 한다. 만약 국가적 지원과 제도적 보완이 잘 이뤄진다면 복고풍이 유행하듯이 기존의 결혼방식이 늘어날지도 모른다."
녹색당과 같은 소수정당의 확산을 꿈꾸며- 시대의 변화를 가장 읽지 못하는 곳 중 하나는 바로 정계가 아닌가 싶다. 정치계의 변화가 너무 더디다. 감독님은 녹색당원으로도 활동하며 동물권, 세월호 사태, 선거제도 개혁 등 다양한 의제에 정치적인 발언을 이어가고 있기도 하다. 녹색당 활동은 언제부터 하셨는가.
"녹색당이 한국에 생겨서 반가웠지만 창당 때부터 함께 하진 못했다. 당시 '카라' 대표였기 때문에 특정 정당에 가입하는 게 회원들에게 어떨까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녹색당의 가치가 '카라'의 활동방향이 일치했기 때문에 가입 안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되어 곧 당원으로 가입했다. '공장식 축산 반대' 헌법소원처럼 동물권을 위한 정치적인 행보가 필요할 때 '카라'와 녹색당이 함께 하는 등 활동의 결이 크게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