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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후 첫 취업까지 걸리는 기간이 평균 11개월을 넘겼다. 첫 취업까지 3년 이상 걸리는 구직자도 약 10%다. 2016년 경총의 자료에 따르면 대졸자 초임 임금 평균은 대기업 기준 4350만 원, 중소기업 기준 약 2500만 원 정도였다.
난 스스로에게 '바로 취직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는 답변을 할 수 없었다. 대학시절의 대출을 제대로 상환할 수 있을 수준의 직장을 구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도 '그렇다'는 답변을 할 수 없었다. 2.25%의 낮은 이자율이 실제 내 삶에서도 부담없는 수준이 될 수 있는가란 질문에도 답을 할 수 없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학자금 대출은 경제학적 시각으로 효율적인 선택이라거나 당장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필요한 대안으로 '모두에게' 인식되지 않는다. 4년제 대학을 다녔고, 이미 지고 있는 빚도 없었고, 등록금을 직접 내야하는 부담감도 없었던 내게도 '대출'은 어려운 일이었다. 상환을 확신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등록금까지 직접 부담해야 하고, 그 확신이 더 어려운 이들에게 대출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연장'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 연장을 넘어서 '족쇄'가 된다.
한국장학재단은 나를 비롯해 많은 대학생에게 등록금 지원을 했다. 많은 이들이 낮은 이율로 학자금을 대출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모든 삶을 구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장학재단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이용했으면 되었지 않느냐'는 식으로 말하며 청년들의 삶을 일반화하고 재단하며, 죽음까지 희화화시키지 말라는 이야기다.
청년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낮은 이율의 대출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는 대신, 그들 스스로가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죽음을 택하거나, 포기하는 청년이 있다면 그것은 무언가를 '몰라서'가 아니다. 그 반대로,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이다. 짊어져야 할 짐이 많아 그것이 삶을 가로막는 '벽'이 되었다는 것을. 학자금 대출은 그 벽을 부술 힘이 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벽이 되고말 것이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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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녀 죽음에 "학자금 대출 알았다면"... 뭐 이런 기사가 다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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