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그 중앙역출발하여 헤이그 중앙역을 지나며
강명구
서쪽 끝에 서서 동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것은 내게 방향이 아니었다. 다만 끝을 향해 달리고 싶을 뿐이다. 지구의 끝을 향해 달리며 전쟁의 끝, 인류의 오랜 수치와 오욕의 끝으로 달리고 싶었다. 그곳에 평화가 있으리란 믿음이었다. 그곳은 내가 온 곳이다. 아마도 인류의 원형이 그러했으리라! 인류의 시작이 그러했으리라! 그러니 끝으로 달리면서 시작점으로 다시 달려가고픈 염원을 발걸음에 고스란히 담았다.
나의 첫 발걸음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덜어주려고 서울에서 동창생 민형성 부부와 이은수 부부가 와서 함께 해주었다. 그리고 파리에서 임남희씨가 7시간이나 넘게 기차를 타고 와주었다.
우리는 함께 헤이그 거리에서 평화의 행진을 하는 것으로 뜻 깊은 출발을 하였다. 민형성과 이은수는 1시간 같이 행진을 하고 헤어졌다. 친구들과 친구들 부인들까지도 먼 길 떠나는 저를 포옹해주었다. 임남희씨는 비를 맞으며 약 20km 정도를 같이해주었다. 그녀와 헤어지고 나는 구도시인 하우다까지 와서 여장을 풀었다.
헤이그의 네덜란드 명칭은 덴하그(Den Haag)이다. 헤이그는 세계 정치의 중심지이다. 이곳에 네덜란드의 정부청사와 국회의사당은 물론 외국 대사관들이 몰려있다. 이곳에 국제 사법재판소와 국제 평화회의장 그리고 국제형사재판소가 있다.
네덜란드의 정식 수도는 암스테르담이지만 실질적인 수도는 헤이그이며 많은 국제회의가 열리며 정치의 중심지이다. 이곳은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의 로켓탄 발사기지로 연합군의 공격으로 폐허가 되었으나 지금은 나무가 많은 유럽 최고의 도시로 거듭났다.
1905년 일본과 미국은 '가쓰라데프트 밀약'을 맺었다. 일본은 우리나라를, 미국은 필리핀을 식민지로 할 테니 서로 간섭하지 않기로 합의를 보았다. 1907년 만국평화회의 때 고종은 이상설, 이준, 이위종 3인을 특사로 파견하여 을사늑약의 불법성을 천명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순국하였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준 열사의 드라마틱한 여정을 내가 이어받기 위해 오늘 이 자리에 섰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정이 녹녹치 않은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지금 희망의 빛이 한반도로부터 떠오르고 있는 것이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