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정사 전경
양승원
등산보다 가볍게 즐기는 산책, 기원정사 둘레길 3시간의 아차산 등산길이 부담스럽다면, 본격적인 등산보다는 산책을 더 선호한다면, 기원정사 둘레길을 추천한다. 긴 고랑 쪽 아차산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향하는 층계 길을 오르면 바로 기원정사 둘레길이다. 산길을 지나 기원정사까지 20분, 다시 기원정사에서 고구려 정 아래 아차산 입구까지 데크길로 20여 분이 걸린다.
먼저 산길을 올라보자. 산길이라지만 나무다리가 네 개나 있고,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적당히 섞여 있어 약간의 땀을 흘리면 쉽사리 오를 수 있다. 이십 대 시절 처음 갔던 한의원에서 원장님이 나에게 물었다. 짧고 굵은 길을 가기를 바라느냐, 가늘고 긴 길을 가기를 바라느냐. 나는 그때, 그 젊음에, 짧고 굵은 길을 가고 싶다고 대답했다.
가늘고 긴 길이라니, 어딘지 지루하고 재미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제는 짧고 굵은 길이 얼마나 몸과 마음에 무리가 될 수 있는지, 가늘고 긴 길이 얼마나 여유로울 수 있는지 안다. 하지만 아직 가늘고 긴 길을 선택할 마음은 없다. 두 가지 길이 적당히 섞여 있다면 인생이 더 재미있지 않을까. 기원정사 둘레길이 바로 그런 길이다. 짧고 가파른 오르막길이 있는가 하면, 가늘고 긴 내리막길이 기다린다.
땀을 닦고, 물 한 모금 마시며 몇 번의 오르막길을 오르다보면, 길옆으로 작은 돌탑들이 보인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제각각 쌓아 놓은 것인데, 그 중 높은 것은 하나도 없다. 돌 서너 개로 쌓아 놓은 낮은 탑들이 전부다. 낮은 탑을 쌓으며 기원했을 나지막한 소원들을 상상해봤다. 오늘 하루가 행복하기를, 가족들이 건강하기를, 오늘 저녁도 맛있게 행복하게 먹을 수 있기를. 그 소원들을 참 예쁘다 생각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산길의 끝, 기원정사에 다다랐다.
기원정사는 조계종 비구니들의 절이다. 대웅전, 작은 주택, 스님들이 기거하시는 요사로 이루어진 작은 규모다. 작지만 대웅전 앞의 잔디밭은 잘 정돈되어 깔끔하고, 곳곳에 놓인 소나무들은 운치가 있었다. 대웅전 앞 층계에 앉아 잔디밭과 그 너머 하늘을 말없이 바라보면 절로 명상이 된다. 운이 좋아 스님의 독경 소리를 함께 들으며 눈을 감았다. 이보다 행복한 명상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땀도 식었고, 명상도 멋지게 끝냈다면 다시 몸을 일으켜 데크길을 걸어보자. 20여 분 동안 걷는 데크길은 아무 부담 없이 주변의 나무를 감상하며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중간 정도에 이르면 길 양옆으로 소나무 숲이 펼쳐진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소나무 향기를 더욱 짙게 느낄 수 있다. 빗방울이 나뭇잎 사이로 떨어지는 소리도 아름답게 들린다. 소원 탑을 바라보며 나지막한 소원들을 상상해보고, 스님의 독경을 들으며 명상도 해보고, 소나무 숲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도 들었다. 이만하면 40여 분의 산책길로 꽤 괜찮은 것 아닐까.
나무 그늘 아래서 늘어지게 한잠, 어린이대공원